도민칼럼-지리산향기31-목욕탕 민심
도민칼럼-지리산향기31-목욕탕 민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29 18: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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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목욕탕 민심


지리산자락 하동의 한 목욕탕, 아침시간이라 젊은 사람들도 눈에 보인다. 땀을 빼려고 사우나실로 들어서니 세 명의 여자가 앉아있다. 20대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아가씨와 파마머리의 50대 아주머니, 머리가 희끗하고 숱이 없는 70대 초반의 할머니, 세 사람은 한동네여서 그런지 서로 아는 눈치다.

20대로 보이는 아가씨가 50대 아주머니를 보며 말을 건넨다.

“아침에 세월호 올라온 거 봤어요?” 50대 아주머니 인상을 쓰며 “하루면 올라오는데 그동안 뭐했드노?” “그러니까요. 그래 금방 올라올 줄은 몰랐어요” “그기 다 대통령이 순실이랑 미친 짓 하느라 냅둬 그런 거 아이라?” 두 사람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 “미친 거제. 즈그 에미애비 낯을 우째 그리 다 깎아먹노!” 그 다음은 육두문자가 오가는 관계로 생략한다.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아직도 어르신들은 70년대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 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에게 사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그 이전 장면 정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박정희 장군이 자기 계획처럼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군 장교인 다까끼마사오였다거나 남로당에 가입했다가 세상이 바뀌자 자기 동지들을 밀고하여 죽인 것은 그의 과거 이력이니 더 따져 묻지 않는다고 해도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을 노린 그가 국민들에게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그 똑똑한 김기춘의 머리에서 나온 지역감정을 조장한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동인 서인이 있어서 붕당정치로 나라가 어지러웠다.

인정이 많은 우리네 성정에 지연은 고향 까마귀도 반가운 것처럼 특별한 인연으로 여겨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좋은 인연을 이을 때 쓰는 것이지 편을 먹어 다른 지역을 폄하할 때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 오십 여년 가까이 어느 지역에 산다는 것만으로 타 지역을 무시하고 정치적인 노선을 정했으며 우월의식까지 느끼고 살아왔다. 보수가 무언지 진보가 무언지도 모르고 어떤 주장이 우리 생활에 이로운 줄도 모르고 같은 고향이니 무조건 밀어주겠다는 그 우직함이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성주에서부터 깨졌다. 능력 없는 리더에게 단지 같은 고향이고 그의 아버지가 훌륭하였으므로 그의 딸도 훌륭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표를 찍어줬다는 것에 부끄러워한다. 마찬가지로 분명 그런 사실을 알고도 국민을 속이고 권력만 잡으려고 한 이들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혼란이 오는 모양이다. 이제 누구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치혐오증도 동시에 커지는 것 같다. 선거 때마다 듣는 ‘그 놈이 그놈’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공공연히 듣는다. 경선 정국이라 어쩌다 토론회를 보는 이들은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늘어지는 모습에 더 정치인들이나 그 주변이 싫은 것 같다.

극성인 사람들이 항상 문제다.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장점보다 상대방의 잘못을 가지고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며 거짓 뉴스까지 만드니 인터넷 공간은 더 어지럽다. 극성인 후보는 본인이 민심을 대변하는 것처럼 트럼프 흉내를 내기도 한다. 아직도 지역감정을 등에 업으면 지지를 받을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러다보니 어느 곳에서는 새로운 변혁을 꿈꾸고 어느 곳에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정치혐오를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살아가야하고 정치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생각은 있어서 이 나라를 바로 세워야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우리가 다들 나쁜 놈이라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제일 나쁜 놈이 우리의 리더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가든 안보를 등한시 할 후보는 없다. 안보는 평화가 가장 우선이니 평화를 유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하동의 어른들만 꿈틀거리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제 국민을 우습게보면 안 된다. 앞서 말한 이야기가 그날 우리가 목욕탕에서 나눈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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