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이웃 사람들
아침을열며-이웃 사람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9.05 18: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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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이웃 사람들


나는 주택가 사거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상가에서 산다. 상가 다락방이 살림집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애초 사람이 살기 위해 지은 집이 아니라 장사를 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여권이 갖춰지지 않은 집이라는 것이다. 열 개의 가게가 모였는데 화장실이 공용이다. 우리 가게는 맨 끝이고 화장실은 우리 가게의 반대편 끝이다. 그러니 아주 춥거나 덥거나 한 때에는 볼일을 보는 것도 일이다. 춥거나 덥지 않아도 급할 땐 말대로 똥줄이 탄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사거리에서 보는 이웃들 '야그'를 할까 한다.

주택가 사거리이다 보니 낮에는 물론이지만 자정을 넘기면서 진풍경이 펼쳐지기 일쑤다. 가족이 잠자는 방 바로 밑이 골목도로다. 어디선가 시간들을 보내고 이제 자정을 맞아 집으로 들어가야 되니 마음은 급하고 술도 취하고 애인은 눈치도 없이 보챈다. 하필이면 우리집 차양 아래 앉아서 그 절박한 마지막 시간을 속닥거린다. 불꺼진 가게집이니 사람들이 자고 있을 거라는, 게다가 자신들의 얘기 소리에 잠을 깨서 짜증을 내고 있다는 생각은 아예 못하고 속닥거림은 끝이 없다. 별수없이 나는 창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여기 사람들 자고 있어요" 하고 짜증을 낸다.

사거리이니까 네 개의 가게들이 각 네 귀퉁이를 차지하고 장사를 한다. 한 귀퉁이는 5층짜리 아파트가 차지했으니 세 개의 가게가 되겠다. 우리 이야기마을이 하나, 비교적 중형급인 마트가 다른 한 귀퉁이에, 중고품을 파는 만물상이 다른 하나다. 네 갈래 골목도로는 작은 빌라들로 이어지기도 하고 상가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광원빌라, 거송빌라, 평화아파트, 은하아파트, 등으로 대부분 3층짜리 작은 빌라들로 이어진다. 중고품 가게 옆으로 세탁소가 이어지고 미장원이 이어지고 광고기획사 겸 간판가게가 이어지고 중소형 마트가 이어진다.

바로 그 중소령 마트가 어느날 갑자기 망했다. 밝은 형광등 아래 각양각색의 상품들로 가득차 소비자를 유혹하던 화려함은 간데 없고 온갖 쓰레기들이 휘날리는 폐가 같은 몰골이라 볼썽 사납다. 건물주인과 임차인이 법정소송에 휘말려버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임차인이 고발을 했고, 여차저차한 까닭으로 건물주인이 맞고소를 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건물주인이 아주 ‘더러운 인간이라는 게 동네 사람들의 주된 소견인 것은 분명하다. “아니, 그 영감탱이는 맨날 세입자들과 싸우고 난리야” 우리 이웃들의 주된 대사를 봐서 그렇다는 ’야그‘다.

중고품 가게 주인은 또 다른 이유로 요즘 이웃들의 입질에 오락가락한다. 누군가에게 중고품 컴퓨터를 팔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노트북 컴퓨터인데 너무 무거운 구형중에서도 구형인 걸 27만 원이나 받으려고 했다가 욕을 먹고 있다. 다 아는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다 딱 걸린 것이다. 컴퓨터를 사려고 했던 사람은 “세에상에 누굴 바보로 아나, 새 걸 공짜로 준대도 안 가져갈 무거운 구형을 근 30만 원씩이나 받아먹으려니 이게 말이나 돼?” 하며 온 사거리가 떠나가라고 외쳐댔던 것이다. 이웃끼리 그러는 것 아니라고 중고품 가게 쪽으로 침을 탁 뱉곤 가버렸다.

비교적 중급인 마트는 요새 신이 났다. 내 잘났네 너 못났데 라며 날만 새면 서로 못 잡아먹어 환장하던 경쟁 마트가 문을 닫았으니 그 자체로 노가 났는데 더해서 적기에 30년 감사세일을 시작한 것이다. “오머오머, 그새 30년 세월이 지났다는 거 아니니?” 하며 이웃들이 서로 서로 웃으며 모여드는 것이다. “뽈뽈 기어다니던 걔가 벌써 군인 갔잖으? 세월 참 빨라. 그 보면 우린 그닥 빨리 늙는 것도 아니야, 그치?” 머리카락이 허옇게 셌어도 말은 그리하며 마트로 모여드니 신날 수밖에. 적기에, 좋은 상품을 비교적 싸게 팔고 있으니 누이좋고 매부도 좋으려나 어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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