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네 가지 이야기
칼럼-네 가지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1.20 18:30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네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세 사람이 함께 말 한 마리를 샀다. 사고 보니 말의 주인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서로 의논을 하다가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의 등을 사지”하자, 또 한 사람이 “나는 머리를 사겠네!”라고 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러면 나는 말의 엉덩이를 사겠네”라고 하여 서로 합의하고 말을 몰고 길거리로 나왔다. 말의 등을 산 사람은 말을 타고, 말의 머리를 산 사람은 앞에서 말을 끌고, 말의 엉덩이를 산 사람은 말 뒤에서 채찍질을 했다. 그러고 보니 영락없이 주인 하나에 종 둘이 따르는 꼴이 되었다. 간교한 꾀를 부려 어리석은 사람을 속임으로써 제 이익을 도모하는 자는 말 등을 산 인간이다.

두 번째 이야기: 청렴한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 먼 옛날 천제(天帝:하늘에 계신 황제)가 뇌사(雷師)에게 명을 내려, 천하사람 중에서 악인 한 명을 골라 벼락을 쳐 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뇌사가 살펴보니 천하의 모든 사람이 다 탐욕스러웠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죽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뇌사는 청렴한 사람을 악인이라 하여 벼락을 쳐 죽였다. 미친 사람이 사는 나라에서는 미치지 않은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여긴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자기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세 번째 이야기: 어떤 고을에 남편이 죽어서 곡(哭)을 하는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매일 밤마다 “영감! 나도 데려가 주오!”라며 울부짖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지붕 위에 올라가 죽은 영감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할멈! 이제 갑시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노파는 귀신이라고 여겨 퇴침을 뱉어 쫓았다. 왜 그랬을까 귀신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기 싫어서였다. 지금 저 이익과 욕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귀신 보다 더 심하다. 그런데 부귀를 탐하는 사람이 밤마다 울부짖는 노파보다 더 많다. 얼마나 미혹(迷惑)한가!

네 번째 이야기: 도둑들이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담을 넘어 도둑질을 할 때에는 두 사람이 한패가 되어 한 사람은 앞에 서고 한 사람은 뒤를 살핀다. 문과 벽에 구멍을 내어 뚫고 들어가서 훔친 물건은 한 사람이 차지하지 않는다. 만약 붙잡히는 상황이 되어 두 사람 다 빠져 나올 수 없을 경우 네가 나를 죽이거나 내가 너를 죽이더라도 귀신이 되어 원망하지 말자”라고 하였다.

그 뒤 담을 뚫고 어느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앞장선 도둑이 막 발을 들여 넣었는데 그 때 마침 집주인이 안에서 발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들어가지도 도망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뒤에 오던 도둑이 “날이 곧 밝아올 텐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라고 하자 앞장선 도둑이 “서두르지 말고 좀 기다려 보자.”라고 했다. 잠시 후 다시 말했다. “일이 급하게 되어버렸구려”그러자 뒤에 선 도둑이 칼을 뽑아 앞에 선 도둑의 머리를 베고 도망쳐 버렸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여 함께 죽기를 기약하지만 끝에 가서는 배반하므로 저 도둑들보다도 훨씬 못하다.

위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심익운(沈翼雲: 1734∼1783)이 쓴 ‘백일집(百一集)’〈잡설사칙(雜說四則)〉에 나오는 내용이다.

날카롭게 세상을 풍자한 심익운의 문학은 시에서도 편린(片鱗)을 드러낸다.

소를 먹이고 빈 여물통 내려놓으니/ 개떼들 달려들어 핥아댄다/ “이 놈들아 핥지 마라!/ 소가 남긴 찌꺼기다”/ 듣고도 못 들은 척/ 꼬리를 흔들며 쉬지 않고 핥는구나./ 이 모습 보고 장탄식하노니/ 개나 소나 똑같은 것이로다.(飯牛置空桶, 群犬來舐之. 語犬且莫舐, 此是牛之餘. 聽之若不聞, 搖尾舐不休. 見此起長歎, 犬牛誠一流)

청나라 초엽의 문인인 대명세(戴名世: 1653∼1713)는 ‘모두가 혹이 달린 나라에서는 혹이 없는 사람이 병자로 취급받고, 모두가 검은 얼굴을 한 나라에서는 하얀 얼굴이 이상하다고 평가받는다‘라는 말로 미친 세상을 조롱하기도 하였다. 위 네 가지 이야기에서 가증스럽고 간교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요즘 서로 너 잘못이라고 탓이나 하는 짓들을 보면 위 네 가지 이야기에 그네들의 모습이 많이도 닮은 것 같아서 씁쓸하지 않은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