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제3회 진등재 문학제를 다녀와서
도민칼럼-제3회 진등재 문학제를 다녀와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12 18: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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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수필가
 

이호석/합천수필가-제3회 진등재 문학제를 다녀와서


지난 8일 의령군 부림면 권혜리에서 ‘진등재 문학회’가 주최한 ‘제3회 진등재 문학제’에 다녀왔다. 진등재 문학회는 이곳 출신 백남오 경남대 교수의 수필 문하생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창원에 적을 두고 있는 수필 문학 단체로, 이곳 진등재 현지에서 매년 봄, 문학제 행사를 한다.

애초에는 권혜리와 진등재(岺)가 모두 합천군 적중면에 속해 있었지만, 1983년 2월, 정부의 행정구역 조정 때 권혜리와 묵방리가 의령군 부림면으로 편입되면서 지금같이 진등재 정상이 합천군과 의령군의 경계가 되었다.

백남오 교수는 이곳 권혜리 오지의 농가에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경남대학교 국어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장기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본인이 쓴 수필 ‘겨울밤 세석에서’ 전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후, 마산대학교 교수를 거쳐 경남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날 문학제에는 마산, 창원, 진주, 의령, 합천 등지에서 60여 명의 문학인이 참석하였으며, 백 교수의 생가 좁은 마당에서 조촐하면서도 알찬 행사로 진행되었다. 우리 합천에서도 백 교수의 수필 교육 수강생 10명이 참석하였다. 행사는 각 지역에서 온 주요 참석자와 임원 소개, 진등재 문학회 연혁 소개, 진등재에 알리는 고유제, 시와 수필 낭송, 제3회 진등재 문학상 수여, 문학 특강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필자는 40여 년 전, 이곳을 꼭 한번 다녀 온 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이렇게 다시 찾아오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처음 이곳에 온 것은 합천군 토목직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인 1970연대 후반 어느 해였다. 당시는 교통이 아주 불편했다. 동료 직원 두 사람과 함께 합천군 소재지에서 적중면사무소까지 40리 길을 버스를 타고와 그곳에서 내려 적중 들(野)을 가로질러 진등재 고개를 넘어 이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때 농촌에는 새마을사업이 한창이었는데 이 마을 안길과 주변 농로를 넓히는 사업을 하기 위해 측량을 하러 왔던 것이다.

제법 무거운 측량기기를 셋이서 나눠 들고, 긴 고개를 힘겹게 넘어 오후 늦게 마을에 당도하였다. 천황산 7부 능선쯤에 50여 가구가 사는 제법 큰 산촌 마을이었다. 양지쪽 아늑한 분위기가 아주 평화스러워 보였다. 당시 마을 어른들의 극진한 환대로 2박 3일간의 출장이 아주 편안하고 즐거웠다. 오늘은 자가용으로 신반을 거쳐 꼬불꼬불한 일 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왔다. 여느 농촌 마을과 같이 빈집이 많고 30여 가구에 노인들만 사는 초라한 모습이다.

1983년, 이곳이 합천군에서 분리되어 의령군으로 편입될 당시 적중면민과 이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서로 왕래하면서 쌓인 정을 떨치기 어려워 많이 서운하였겠지만, 군민 전체의 정서는 그렇게 아쉬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는 이곳이 그렇게 중요한 곳도 아니었고, 행정을 수행하기도 어려운 오지 중의 오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합천에서 버리다시피 한 이곳에서, 제법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백남오 교수와 같은 훌륭한 문학인이 나왔고, 또 조상 대대로 왕래하던 많은 사람을 항상 힘들게 하던 진등재도 지금은 뭇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한 채, 수필 문학의 요체로 떠오르면서 이렇게 많은 외지의 문학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필자는 이번 문학제를 보면서 아무리 쓸모없는 땅도, 그곳에서 인물이 나고, 그곳 정서에 알맞은 장르의 문학이나 시설 등을 개발하면, 얼마든지 가치 있는 곳으로 살아날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합천에서도 조상들의 얼과 한이 서린 이 진등재를 그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오랜 세월 같이한 이곳 주민들과 정을 도탑게 이어가면서 새로운 문학적 관계로 꽃피우기를 기대해 본다.

이날 이곳에서 우연히 여든다섯 살 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마을 이장도 오래 하셨다고 한다. 필자가 합천에서 왔다고 하니까, 옛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가워하며, 예전 합천군 시절의 얘기를 줄줄이 풀어 놓는다. 당시 군청소재지의 중요 인물들과 그곳에서 있었던 일 등 얘기가 끝이 없다. 나도 마치 40여 년 전 헤어진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너무나 반가워 한참을 맞장구 쳤다.

이날 행사는 초라하고 좁은 백남오 교수의 생가 마당에서 펼쳐진 그리 크지 않은 행사였지만, 자연과 문학 속의 현장에서 치러 진 이 행사는, 그 어떤 큰 단체의 화려한 행사보다 더 큰 감명을 주었다. ‘진등재 문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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