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의 ‘인민해방군가’를 아시나요?
칼럼-중국의 ‘인민해방군가’를 아시나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15 18:3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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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중국의 ‘인민해방군가’를 아시나요?


1990년 베이징의 하계 아시안게임 경기장에서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 사회자의 개막식 선포가 있자 첫 프로그램으로 장엄한 음악이 연주되었다. 모두들 일어서서 옷깃을 여미고 경건하게 듣고 있었다. 이때 연주된 음악은 ‘인민해방군가’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곡의 작곡가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 작곡가는 중국인이 아닌 조선의 독립투사요 음악가인 정율성(鄭律成:1914~1976)이었다. 그가 죽고 난 뒤, 중국의 유명한 시인이며 정율성의 전우였던 하경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율성을 통하여 조신민족을 알았다. 정열적이고 재간이 많고 정의감과 헌신성이 강한 것이 조선민족인 줄을 알았다. 그 뿐만 아니라 정율성을 통해 수많은 조선민족의 아들딸들이 중화민족의 해방사업을 위해 총을 들고 용감하게 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율성처럼 시대의 앞장에 서서 중국 인민을 혁명의 제1선에로 고무충동해준 일류 예술가를 낳아 키워준 것이 조선민족인줄 알았다” 이는 정율성이 항일전선에 참여해 공로를 세운 사실을 말하면서 저항 음악가로서의 그를 기린 것이다. 그가 죽은 1년 뒤 1997년 4월에 베이징 교외 팔보산 혁명공묘에 묘비를 세웠는데 그 앞면에는 간단한 이력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정율성 동지는 1914년 음역 7월 7일에 조선 전라남도 광주의 한 혁명가정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 애국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33년에 중국에 와서 난징과 상하이 일대에서 항일구국활동을 벌이다가 1939년 1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자신의 생애를 중국 인민의 혁명과 건설사업에 바쳤다. 그는 충성스런 국제주의 전사이다. 1976년 12월 7일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62세이다’ 그의 생애와 공적을 간단하게 적었으나 중국혁명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음악을 통한 문예운동의 일급 공적을 인정받았다. 현재도 중국 사람들은 국가 공식행사에서 그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는 조선의용군과 군정학교의 교사를 맡았던 독립투사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 명성을 얻으면서 수많은 조선독립군가와 중국 공산당 휘하의 팔로군 군가를 작곡했다. 그가 중국으로 가게 된 사연은 그의 맏형과 둘째 형이 독립투쟁단체인 의열단(義烈團) 단원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갈 때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해서 그의 길고 긴 망명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항일 근거지였던 난징으로 가서 항일단체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하면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갔으며, 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인 독립투사 휘하의 ‘조선의용군’ 그리고 ‘조선독립동맹’, 그 산하의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항일활동을 하면서도 러시아 음악가인 끄릴노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피아노 공부와 성악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의용군행진곡’·‘조국을 향해 나가자’·‘조선해방행진곡’·‘조선인민행진곡’·‘노들강변’·‘늴리리’·‘달아달아’·‘농부가’·‘방아타령’·‘양산도’ 등 민족정서를 담은 360여 곡을 새롭게 작사·작곡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애국심 고취와 민족정서를 쉴 새 없이 노래함으로써 조국에 헌신하려 했다. 그는 중국 현대 3대 음악가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음악가이기 전에 조선의 독립투사였다.

김대중 정부 이후 5월 18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주화운동의 열사들에게 바치는 묵념과 함께 불리는 노래가 될 정도로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어 기념식장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되었으나 2010년과 2013년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빼려다 유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3년 6월 국회에서 이 노래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어 행사 때 공식적으로 제창하게 되었다. 전국가보훈처장이 5·18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자율적으로 부르게 한 문제로 시끄러워 한번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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