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항일투사 이관 선생 순국 90주년(3)
진주성-항일투사 이관 선생 순국 90주년(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14 18:40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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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이관 선생 순국 90주년(3)

이관 선생의 재판기록이나 자료집에 나와 있는 행적 등을 종합해 볼 때 그가 독립선언서의 초안 작성자임에 틀림없다면서 이같은 사실들을 새긴 선생의 공적비를 세우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되었다.

앞으로 좀더 연구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관 선생이 어떤 형태가 되었던지 간에 독립선언서 완성과정에서 관계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관 선생은 호를 중국인 학자들에게 받았는데 압록강 아래 최고의 문장이라는 뜻에서 녹초라고 했다.

1919년 당시 서울 종로 가회동에 거주하고 있었고 천도교(天道敎) 전도사(傳道師) 및 편집원(編輯員)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공적(功績)을 의심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처음 작성하고 최남선이 수정본을 제출했을 것이다.

이종일 선생. 손병희 선생으로부터 대한독립의 취지 설명을 듣고 3·1운동의 취지(趣旨)와 목적(目的)을 잘 알기 때문에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3·1운동 이후에 격문(檄文)기초자로 일경(日警)에 체포(逮捕)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살던 이경상(李璟相)은 일제 시대부터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싶었으나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일찍 별세(別世)하셨다면서 독립선언서의 기초자라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단성면에 산청독립유공자 추모비(88인 공동)를 세워 이관 선생의 성명도 함께 새겨졌다.

이관 선생은 상당한 실력을 갖춘 분으로 추정되는데 중국문학사에서 높은 문학성과 인지도를 가진 작품으로 유명한 왕신보의 서상기(西廂記)와 조설근의 홍루몽(紅樓夢)을 든다.

이 서상기를 이관 선생이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진계유는 천고제일의 문학작품이라 평하고 김성탄은 하늘이 만들고 땅이 설계한 천하의 묘문(妙文)이라고 평가하는 서상기를 번역했다는 사실을 그의 문집(敬菴集)에서 밝혔다.

이관 선생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았으며 정부는 이관 선생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묘소는 향리에서 가까운 길리(吉里)언덕 풍광 좋은 곳. 산세가 빛난 서좌(西坐)에 안장(安葬)되었다.
금년 2018년은 이선생의 별세 9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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