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소수서원(紹修書院)
진주성-소수서원(紹修書院)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1.03 19: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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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소수서원(紹修書院)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8번지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1963년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1541년(중종36년) 7월에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1495-1554)이 이듬해 8월에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회헌 안향(安珦 1243-1306)을 배향하기위해 사묘(祀廟)를 설립했다가 1543년 8월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하여 사원을 완성 서원의 시초이다.

백운동은 중국의 주회가 강학한 백록동서원을 모방한 이름이다. 1543(명종3)년 10월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1501-1570)은 서원을 공인화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이듬해 1월에 경상도 관찰사 심통원(沈通源)에게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따라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1484-1555)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 ‘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紹修)로 결정하고 백운동 소수서원이라고 명명했다. 소수는 순흥에서 폐지된 학교를 다시 세워 단절된 도학을 잇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550년 2월 21일 백운동 소수서원 이라는 사액을 받아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에 왕명에 의하여 성리학의 정통성을 서원도 인정받게 된 것으로 이전의 서원과 다른 차원의 서원이 되었다. 주세붕은 ‘회헌선생실기’에서 “왼쪽으로는 죽계수가 휘감아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소백산이 높이 솟아 구름과 산과 언덕과 물줄기가 실로 중국의 여산에 못지않다”라 하였고, “구름이며 산이며 언덕이며 강물 그리고 하얀 구름이 항상 골짜기에 가득하므로 감히 이곳을 이름하여 백운동이라 하였고 감회에 젖어 배회하다가 비로소 사당 건립의 뜻을 갖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곳은 퇴계가 이야기한 것처럼 마을이 그윽하고 깊숙하여 구름에 잠긴 골짜기가 아늑한 곳이다. 유생들이 노닐고 감독하는 장소로 삼을만한 곳이다.

1456(세조2) 9월에 순흥으로 유배된 세종의 다섯째 아들 금성대군과 순흥 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 밀모사건으로 인해 순흥부(府)가 풍기군의 한 면(面)으로 편입 강등되고 순흥향교가 폐지되었다.

이곳은 슬픈 역사를 안고있는 지역이다. 설립배경이 관학인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서원은 사학으로 행정상 조정과 독립되어 있었고 자체 은둔사상등 강학과 제향을 위해 건립된 서원은 주로 마을에서 떨어진 골짜기가 깊숙하여 구름에 잠긴 아늑한 곳에 나아가 자리를 잡았다. 퇴계가 주장했듯이 은거하여 뜻을 구하는 선비와 도학을 강명하고 업을 익히는 무리가 노닐고 강독하는 장소로 삼을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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