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도깨비들의 난장판
진주성-도깨비들의 난장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1.08 18:5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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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도깨비들의 난장판

우리 집에는 백주대낮에 도깨비가 나타난다. 집사람이 퇴직을 하고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 가끔씩 입술이 숯 검댕이 같이 시커먼 저승사자까지 불러와서 제집같이 휘젓고 다닌다. 도깨비가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한다. 집사람에게 물어볼 말이나 일러줄 말이 있어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를 떠야한다. 도깨비가 나타면 내가 말을 걸어도 집사람은 아무 대꾸도 못 한다. 어린 시절의 이맘때인 겨울밤이면 아랫목의 이불 밑에 모두가 발을 묻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듣던 이야기속의 도깨비처럼 퉁방울 같은 눈에 머리에 뿔이 나고 엄니가 길쭉한 그런 도깨비가 아니다. 그래선지 집사람은 너무도 진지하여 관망이 아니라 가히 몰입의 경지에 빠진 무아지경이다.

100개도 넘는 TV 채널에서 집사람은 귀신같이 도깨비를 불러내는 것으로 보면 도깨비에게 홀려도 아주 단단히 홀린 것이다. 몇 해 전엔가 방영됐던 도깨비가 아직도 우리 집에만 나타나서 집사람을 홀리는 것이다. 이것은 아니다싶어 내가 도깨비와 맞서보려고 진공청소기를 작동시켜 거실바닥을 휘저으며 대들어 보았다. 신출귀몰하고 능수능란한 도깨비의 도술인지 전기코드가 뽑히는 바람에 3분 1라우는커녕 시작과 동시에 완패했다. 우군이 없는 나로서는 삼십육계가 상책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도깨비 말고도 또 있다. 아침밥상을 마주하면 어김없이 인면수심의 야수들 우리 집으로 쳐들어온다. 여자들은 앙칼진 소리를 내지르며 싸움질도 한다. 악을 쓰든 박이 터지든 제집에 가서 싸우래도 막무가내다. 이골이 난 나로서는 벅수 입에 소금 퍼 넣듯이 꾸역꾸역 밥만 먹고 얼른 피해버린다. 불륜과 패륜은 기본이고 걸핏하면 출생의 비밀 등 저질스런 드라마가 아침밥상머리에 먼저 올라앉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학교 위에 있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이해랑 교수님을 뵙던 자리에서 데뷔작 ‘두고 온 산하’의 신봉승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시나리오 창작으로 무뎌진 정신세계를 일깨우고 싶다고 했다. 선생이 작고하기 몇 해 전 모 방송에서 정신을 보지 못하는 자격 없는 작가들의 작품이 판을 친다며 방영에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자꾸만 생각나는데, ‘말이 되는 내용이면 누가 보나요?’ 하는 집사람의 말이 도깨비소리로 들려온다. 요즘의 방송 프로그램의 거의가 도깨비 아닌 도깨비들의 난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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