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한의 핵목록 제출만이 협상의 첫걸음
시론-북한의 핵목록 제출만이 협상의 첫걸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2.13 19:0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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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

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북한의 핵목록 제출만이 협상의 첫걸음

지피지기이면 백전백승이다. 전쟁이든 협상이든 무엇보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물건을 사고팔 때에도 물건을 알아야 흥정할 수 있다. 뭔지도 모르면서 뭘 협상하는가. 북핵 폐기는 먼저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장비·시설·기술의 내역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를 개발·보유하지 않겠다는 비확산 약속으로 190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회원국은 반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Safeguards Agreement)을 체결해야 하는데, 이는 핵목록 제출을 뜻한다.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관련 내역을 목록화하여 제출하고, 그러면 IAEA가 그 사실 여부를 사찰·검증한다. NPT 가입후 18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체결하도록 되어 있는 핵안전협정은 핵물질·시설·기술이 군사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IAEA가 회원국을 사찰하는 협정이다.

북한은 1985년 NPT에 가입했으나 핵목록 제출을 미루다가 소련이 붕괴하고 1992년에야 핵안전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 후 목록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과정에 반발하여 1993년 NPT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보유했다. 북한이 제출한 핵목록은 거짓이었던 것이다.

북한의 핵위기가 NPT 탈퇴로 시작되었기에, 그 위기의 해소도 NPT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만의 문제도, 북한과 한국, 북한과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비핵화는 첫째, 북한의 NPT 체제 복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북한이 진정 비핵화 의사가 있다면 NPT 탈퇴를 철회해야 한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지금의 상태 그대로 복귀할 수는 없다. 적어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NPT에 복귀할 것임을 약속해야 한다. 둘째,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와 물질·장비를 목록화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이로써 핵폐기 약속은 비로소 실천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셋째, 그 목록에 근거하여 철저한 사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북한의 NPT 복귀를 공식화하고 NPT 차원에서 북한의 핵포기 및 NPT 체제 유지 노력을 평가하고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공식화한 이래, 그동안 북핵 폐기를 위한 노력이 전개되어 왔다. 2018년 한 해만 해도 남북 정상회담이 3차례 이루어지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도 있었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면서 6차례 북핵실험이 이루어진 풍계리 핵실험장도 해체했다. 그러나 핵목록 제출이 없는 한 이 모든 것은 탐색전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북핵폐기는 시동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핵목록 제출이 중요하다. 그것만이 협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ICBM 폐기와 개성공단 등 경제적 보상을 교환하는 ‘스몰딜’에서부터 핵폐기와 체제보장의 ‘빅딜’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감축·철수설도 흘러나온다. 단번에 목표를 관철하기 보다는 과제를 세분화하여 하나씩 해결해가는 살라미전술을 북한도 미국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북핵 폐기라는 목적지를 잃지만 않는다면 밀고 당기는 살라미가 효과 없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협상의 목표는 분명해야만 한다. 북핵 폐기를 목표로 북한의 핵목록을 공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세계를 속이는 보여주기 쇼에 지나지 않는다. 핵목록을 내놓지 않는 한 거짓이다. 거짓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북한은 핵목록을 공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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