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흙탕 간판홍수 속, ‘봄’을 구하자
시론-진흙탕 간판홍수 속, ‘봄’을 구하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03 19:0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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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문학박사·고성향토문화선양회 회장

박서영/문학박사·고성향토문화선양회 회장-진흙탕 간판홍수 속, ‘봄’을 구하자

3월이다. 말 그대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계절’이다. 산과 들은 온통 푸르름이 넘쳐나고 하루가 다르게 두터워져 가는 봄볕은 온 천지에 활기를 부추긴다. 메말랐던 계곡에 얼음 풀린 개울물이 흐르고 돌 틈 새 버들강아지가 움이라도 틔우면 온몸이 들썩들썩, 누구나 집안에 들앉아있기가 아깝다. 온갖 이름의 등산모임에 향우회, 동문회, 청년회에 부녀회, 노인회, 문학 동아리, 수십 수백 종류의 취미 클럽…동네마을마다 시끌벅적, 온 나라가 소란스러워진다.

때론 귀찮을 수도 있지만 ‘나들이’는 누구에게나 대체로 즐겁다. 가까운 곳 맛집을 찾아 나서기만해도, 할인매장이 몰려있는 옷가게골목에 들러 봄옷 한 벌을 장만하더라도 나들이는 기분이 좋다. 하물며 날 잡고 벼르다 관광버스라도 타고 온갖 먹거리에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펼쳐지는 관광명소 나들이는 출발 전부터 밤잠을 설치는 설렘까지 겹친다.

그러나 막상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면 우리의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풍경부터 맞닥뜨리게 된다. 유원지 입구를 가득 메운 흉물스런 간판 숲 때문이다. 먼발치에서는 그나마 좀 드문드문 하던 간판 행렬은 주차장이 가까워지면서 아예 양쪽 길가를 빼곡히 메운다. 울긋불긋 요란한 색채에, 또 크기는 경쟁이라도 하듯 왜 그렇게들 큰지! A농원, B체험장, O식당 등은 그래도 양반이다. 대낮부터 네온불을 깜빡이는 노래방 간판이 곳곳에서 번쩍대는가 하면 또 유원지 마다 웬 모텔, 호텔 간판은 그렇게 많은가?

도대체 이 나라에 법률은 왜 만들어져 있고 숱한 규정들은 왜 정해 두었는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진흥에 관한 법률(2017년 7월 26일 개정)’, ‘동법(同法) 시행령(2018년 12월 18일 개정)’, ‘건축법’, ‘소방법’, ‘도시계획법’, ‘도로교통법’ 등…모두 온갖 종류의 간판과 광고홍보물의 설치 및 제작, 관리에 관한 엄격하고 자세한 규정을 담고 있는 법률들이다. 관광지는 물론 도시지역, 자연공원, 공항, 항만, 하천, 보전산지, 문화재 보호구역까지 별도의 광고물 관련 규정을 자세히 정해두고 있다. 규제대상으로 잡은 광고물의 종류도 낱낱이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일일이 불법사례를 열거하기 전에 뭉뚱그려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실상이 그 답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는가? 간단한 실례 한두 가지만 들어보자. “간판 등 광고물의 글자표시는 한글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외국문자를 표시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倂記)해야 한다”, “광고물은 지면, 건물, 그 밖의 구조를 통해 고정(固定)되어야 하며 이동할 수 있는 간판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이 규정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영어, 한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적조차 알 수 없는 온갖 문자들이 난무하는 간판들은 어느 나라 광고판들인가? 도시든, 유원지든 어느 곳을 가도 이리 딩굴 저리 딩굴 온통 발에 채는 ‘에어라이트(풍선형 입간판)’들은 떠돌이 불법유동광고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간단한 글자표기, 고정 여부 등 아주 손쉬운 규정조차 사정이 이럴진대 간판의 크기, 색상, 간격 등 판단기준이 다소 애매해지면 한 마디로 ‘규정 따로, 현실 따로’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 폰 시대, 누구나 손 몇 번 까딱하면 모든 게 검색되는데 이런 불법, 위법 광고물이 여전히 판을 치는 것은 왜일까?

명산과 다도해가 어우러져 자연 풍광이 빼어나 유난히 명소가 많은 남도(南道) 경남. 이 글을 준비하면서 도내 이름난 계곡만 뽑아보아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거창 수승대, 고성 연화산, 밀양 얼음골, 산청 백운동, 양산 배내골, 의령 찰비, 함양 용추, 합천 홍류동…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이러한 명소들의 입구나 부근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줄지은 음식점과 특산물 매점, 유흥업소, 숙박시설들의 수만큼 즐비한 위법·불법 광고물의 무질서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상남도는 행정안전부의 지침에 따라 지난 2월 말께부터 이 달 22일까지 도내 502개 초등학교 주변의 불법, 위험 광고물 일제 점검과 단속을 벌이고 있다. 또 올해 중 도비 8400만원과 통영시 예산 1억 9000여만원 등 2억 8000여만원을 들어 통영시 ‘강구안’ 지역을 대상으로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을 펼친다고 한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청량제가 되어 이 혼탁한 간판의 진흙탕 홍수를 맑은 물로 정화시킬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오랜 건축물과 잘 정비된 간판 등으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알려져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파리 제16구 라퐁텐(Rue la Fontaine) 거리와 샹젤리제(Avenue des Champs Elysees) 거리를 꿈꿔 보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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