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거제 포로수용소 공원화
진주성-거제 포로수용소 공원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07 19:12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거제 포로수용소 공원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0분 북한공산군은 일제히 38선을 넘어 육로와 동해안을 통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이 정식 조인됨으로서 3년 1개월간 참담했던 한국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막을 내리고 38선을 휴전선으로 하여 민족분단의 비운을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사로잡은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키로 결정. 섬이라는 지리적조건과 관리에 경비 등 최적의 장소로, 수용규모는 22만명으로 결정되었으며 1950년 11월부터 섬의 중심부인 신현면 고현리와 연초면 동부면에 면적 1,200만㎡ 부지에 수용소 설치 공사가 시작되었고 부산에 수용된 포로 5만명도 합류 수용했다. 북한군 중공군 여성 등 17만 3000여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포로수용소는 한국군과 유엔군의 경비하에 포로 자치제로 운영했고 포로송환문제를 놓고 북한으로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와 갈려 대립하였는데 유혈사태를 빚기도 하였다. 친공포로들은 수용소내부에 조직을 만들어 소요 및 폭동을 일으켰으며 1952년 5월 7일에는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 프랜시스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이른바 거제도 포로 소요사건을 일으켜 30일이 지난 6월 10일에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유엔군 사령부가 반공포로와 친공포로를 분류 분산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952년 8월까지 북한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은 거제도를 비롯하여 용초도 봉암도 등 여러곳으로 분리하였고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제주, 광주, 논산, 마산, 영천 부산등지로 이송되어 소규모로 분산되었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된 뒤 33일간에 걸쳐 거제도에 수용된 친공포로들이 모두 북한으로 송환됨에따라 포로수용소도 폐쇄되었다.

포로수용소의 건물 일부 남아있던 수용소 유적은 6.25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민족역사 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고 1995년부터 유적을 공원화하는 사업이 추진 1998년 9월에 착공 1999년 10월 1차유적관을 개관 2002년 11월 완공 총6만4,224㎡의 부지에 조성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는 분수광장 철모광장 흥남철수작전기념비 탱크전시관 무기전시장 당시 포로수용소의 생활상 및 폭동현장 6·25역사관 포로생활관 극기훈련장 여자포로관 MP다리 등 영상으로 볼 수 있는 포로수용소유적관 막사 감시초소 등 실물로 재현한 야외막사 경비대장 집무실 등 실물유적을 볼 수 있는 잔존 유적지 기념촬영코너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