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작가-마음의 소리, 앵글 속 자연에 담아내다
이동훈 작가-마음의 소리, 앵글 속 자연에 담아내다
  • 정은숙 지역기자
  • 승인 2019.03.19 18:50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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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진수필집 ‘산으로 가는 길’ 출간
일천번 오른 정성에 감동한 ‘산’의 선물
표지 순백의 산처럼 그의 내면이 곳곳에

사진과 수필이란 평생의 나의 삶 일부분
한장의 사진 완성에는 10년 이상의 무게
하나의 꿈은 ‘어린왕자’ 같은 책 내는 것
▲ 경북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에서 이동훈 작가

‘산으로 가는 길’, 하동사람 이동훈(58) 작가의 사진 수필집이 출간됐다.


그에게 산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산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꿈이었다.’고 하면서도 산에 뿌리를 두고 산이 부르는 힘을 따라 기어이 산으로 가는 사람. 그는 수행자처럼 산을 오른다. 40년 동안 지리산을 1000번 이상을 올랐다고 한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산이 자석처럼 부르고 그 부름에 그의 몸과 영혼이 충실하게 화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오르고 싶었던 것은 분명 유형의 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친구가 기꺼이 내어 준 표지의 눈덮힌 순백의 산처럼 깊고 높은 순백의 세계, 감히 접근하기 힘든 그의 정신세계가, 그가 품은 이상이 사진 작품마다 곳곳에 녹아있다.

그는 수필과 시로는 아픔을 말하고 사진으로는 승화된 맑고 투명한 고도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이 사진수필집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수필집 한 권을 다 읽은 느낌이다.

이 사진수필 집에는 일생 산에 대해 사진에 대해, 또 주어진 삶에 대해 ‘지극’한 한 사내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지극함’에 감동한 지리산의 선물, 일천 번의 정성에 감동한 ‘산’의 선물이 이제 이동훈 작가 앞에 산처럼 놓여있다.

이동훈 작가는 한국농어촌공사 하동남해에서 근무하는 시인이며, 수필가이며 사진작가이다. 잡지 ‘곰단지’에서 사진수필을 연재 중이며, ‘수필춘추’에 글이 실리기도 한다. 현재 사진수필집 ‘산으로 가는 길’은 인터넷 7곳에서 판매 중이다.

이동훈 작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산이 주는 무게감이 엄청나다. 작가에게 산은 무엇인가?
▲본능 같은 것이었어요. 아주 어린 날부터 이 세상은 내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본능적으로 느꼈어요. 그 세상 대신에 자연스럽게 파고든 것이 산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나에게 산은 형태만의 산이 아니라 사람을 차단하고 세상을 차단하고 마침내 모든 것을 차단하는 ‘적멸의 공간’ 같은 것이었지요.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없는 공간, 생 이전의 세계 같은 그런 공간이었어요.

이동훈 작가가 찍은 하동 평사리 여름
이동훈 작가가 찍은 하동 평사리 여름
하동 평사리 가을
하동 평사리 가을

-사진수필집은 어떤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나
▲내게 글과 사진은 이 세상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어요. 어딘가에 깊이 몰입하여 세상을 잊는 것. 그게 내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었지요. 그게 없었다면 내 삶은 진작 끝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글과 사진이 나를 지켜주었으니 나도 조금은 지켜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요. 예전에는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으면 그걸 땅에 묻거나 불태웠는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쌓아두고 지켜가기 시작했어요.


-작가에게 인생을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어 준 것이 있다면
▲글 속에서 하나의 사진을 얻고자 한다면 적어도 십 년을 찍어야한다고 했다. 나는 사진 한 장면을 대부분 십 년 이상 찍었어요. 처음 찍을 대상을 정하면 내가 최후에 그려 낼 장면을 정해요. 찍어가는 사진 중 대표적인게 강양항 일출이나, 솔섬의 별 같은 사진이고, 또 몇 작품은 아예 시작도 못하고 마음에 그리고만 있어요. 거제 해금강 일출과 대소병대도의 궤적 사진, 서해안 꽃지의 일몰 사진이 그런 경우로 꽃지의 일몰은 한 달을 넘게 했지만 아직 접근조차 못한 그런 경우입니다. 십 년 전에는 여기서 꽃지까지 가는데 하루가 걸렸어요. 꽃지에서 일 년에 삼박 정도 했으나 십 년이 지나도 시작도 못한 그런 경우지요. 가면 무엇을 찍든지 사진은 찍어요.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아니니 사진이라 말할 수가 없는 거죠. 요즘 들어서는 내가 그리는 장면은 끝내 못 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을 가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길의 끝에 닿는 일은 하늘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매화
매화

-작가의 글 속에는 아픔이 있고 사진 속에는 빛나는 그 무엇이 있다. 사진 속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진의 끝에 도달한다면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겠죠. 지금은 다만 추측하는 것 일뿐 무엇이다 말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것은 이 세상의 투명함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죠. 내가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은 몇 번째 작품집인가
▲미발표작까지 하면 7~8번째쯤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보관하고 있는 건 없으니 몇 번째 작품집이란 말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죠.

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가장 아끼는 사진 작품, 시, 수필, 소설을 소개한다면
▲십 대 때 소설 공부할 때 감동적인 만화를 보면 그걸 소설로 바꾸어 쓰는 연습을 했어요. 그게 내 소설 공부하는 방식이었지요. 장편, 단편 아주 많이 썼어요. 다 불태웠지만. 사진은 십 대 때 찍은 사진 하나가 기억에 남는데 지리산 천왕봉에서 제석봉 쪽으로 조금 내려와서 찍은 사진으로, 장터목 너머에 있는 작은 봉우리 하나를 운해가 산허리를 두르듯 둥근 테처럼 감싸고 있는데 그 곁에 고사목 한 그루가 절묘하게 비껴 서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었어요. 당시 읍단위에는 칼라사진을 뽑지 못해 진주로 사진을 뽑으러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 대량으로 그 사진을 뽑아서 아는 이들에게 선물을 했어요. 그게 돌고 돌아서 내게까지 전해졌어요. 그 이후로는 인화를 하지 않고 필름으로만 보관하다가 세상 밖의 길을 걷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맡겼다가 종내 다 잃어버렸어요. 그때 써 두었던 글도 모두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으니 미련이 남는 거겠죠. 아끼는 건 없어요. 극복할 대상이 있을 뿐이죠.

-작가에게 남은 꿈이 있다면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같은 예쁜 책을 하나 만드는 것. 그리고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 꿈이 하나 있어요. 그 꿈을 위해 지금까지 그래왔듯 내 모든 힘을 다 쏟겠지요.

-언제까지 산을 오를 생각인가
▲육신의 나이로는 여든 살까지 지금처럼 산을 오를 생각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도 근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여든 지나 산을 쉬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처럼 무겁게 짐을 지지 않고 가볍게 움직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또 같은 길에 있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
▲내 길도 모르는데 누구에게 무얼 말해주겠어요.

사천 솔섬에서 찍은 별 궤적
사천 솔섬에서 찍은 별 궤적

-글 속에서 딱 한 번 행복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생의 고통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하나. 작가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사실 내 자신의 행·불행에는 관심이 없어요. 어떤 상태가 행복인지 불행인지 구별도 못하겠고. 다만, 마흔 아홉 살이 되면서 처음으로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꽃잎에 내려앉은 햇살 한 점, 풀잎을 어루만지는 바람 한 점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삶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정은숙 지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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