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
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20 17: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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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시선-이쪽과 저쪽

그 옛날 젊은 철학도 시절, ‘시선의 방향’을, 즉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라는 것을 철학적 주제로서 사유해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존재와 무’(삶과 죽음, 이세상과 저세상)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현상이 주제였지만,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무’에 시선을 두는 전환이, 즉 ‘저쪽’을 ‘이쪽’으로 ‘이쪽’을 ‘저쪽’으로 만들어보는, 다시 말해 저승에서 이승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대충 그런 것], 전혀 다른 관점에서, 즉 ‘우리나라와 다른나라’ 라는 관점에서 이게 다시 내 철학적 관심을 자극한다. 지금 내 몸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인 한국을 떠나 ‘다른나라’인 중국에 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평소와는 다른 ‘시선의 방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늘 ‘이쪽’이었던 한국이 이제 ‘저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저쪽’이었던 중국이 ‘이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의 방향 전환에서는 대개 객관성이라는 것과 함께 애국심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작동하게 된다. 그런 건 내가 예전에 일본에 있었을 때도, 독일에 있었을 때도, 그리고 미국에 있었을 때도 비슷하게 느낀 적이 있었다.

이제 ‘저쪽’에 있게 된 한국과 ‘이쪽’에 있게 된 중국은 뭔가 평소와 조금씩 달라보인다. 특히 장점과 단점 같은 가치적 주제가 더욱 그렇다. 느낀 점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 한다.
그중 하나.

저쪽인 한국에 있을 때 이쪽인 중국이 좀, 아니 많이, 고약하게 보일 때가 많았다. 삼성폰과 현대차의 중국내 판매 점유율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는 보도를 접할 때도 그랬다. 여행제한 한류제한 롯데압박 등 여러 형태로 사드보복을 겪을 때도 그랬다. 왕이 외교부장의 무례한 태도를 접할 때도 그랬다. 엄청난 미세먼지 공습에도 책임회피를 할 때도 그랬다…그런데 그 ‘저쪽’이 이제 ‘이쪽’이 되고 보니 약간 다른 시선이 생겨난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중국인들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조금은 드는 것이다. 한국이 삼성과 현대에게 박수를 치듯 중국도 화웨이와 샤오미에게 박수를 치는 것이 완전히 같은 것이다. 오늘 아침 바이두에서 알린 화웨이 부회장 멍완저우(孟晩舟)의 캐나다 재판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중국인들의 열광적인 ‘화이팅!’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화웨이의 5G 시스템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니 침략을 겪었던 중국으로서야 이런 게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자동차는 세계적인 중국 메이커가 없기는 하지만 구매력이 늘어난 이들이 독일차 일본차 미국차를 소비하는 것은 한국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사드보복이나 외교적 무례도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자연스럽다. 중국은 지금 명실상부한 G2로서 미국과 대결 중인데 한국은 그 동맹이니 바로 코앞에서 중국을 위협할 수도 있는 미국 무기를 배치한다니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예쁠 턱이 없다. 미세먼지 문제도 중국이 일부러 한국을 괴롭히려고 서풍을 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이 문제에서는 ‘내 코가 석자’다. 이곳 북경대의 교수들도 ‘스모그 때문에 봄이 봄이 아니다’라고 한탄을 했다. ‘여행을 하시려면 가을이 좋다’고 내게 조언하기도 했다. 지구가 동에서 서로 자전하는 것은 중국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하필 중국 옆에 터를 잡은 단군의 실책일 수도 있다.

자, 그럼 어쩔 것인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 북경에 와보니 엄청난 숫자의 한국인 유학생이 있었다. 내가 머무는 북경대에만 4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미 귀국한 사람도 엄청나다. 이들은 실력도 뛰어나다. 이런 중국통들을 국가가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이런 아까운 일이 없다. (예컨대 내가 아는 많은 일본통과 미국통과 유럽통들도 국가적으로 전혀 활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그런 것이다. 인재는 결코 없지 않다. 제갈량을 찾은 류비같은 그런 관심과 노력이 없는 것이다. 수년전 언젠가 학교 동료들과 중국 산둥반도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그 끄트머리 해안에 거대한 바위가 세워져 있었던 게 기억난다. 인상적이었다. 거기엔(정확한 문구는 잊어버렸지만) 덩샤오핑인지 장쩌민인지가 쓴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인국인방을 바라보자’ 라는 취지였다. 그건 아마도 한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 것이다. 짧은 한동안 한국이 중국보다 좀 잘 나갈 때였다. 답은 오직 거기에 있다. 한국이 중국보다 더 잘나가야 하는 것이다. 더 단단하고 힘 있고 고급스런, 그래서 배울만한 나라. 단언하지만 이들의 태도를 바꾸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 그것 없이 중국을 향해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힘의 역학관계로 움직이는 국제사회에서 그런 게 통할 턱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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