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댁 할머니의 보고픈 친정마을 친구들
기고-새댁 할머니의 보고픈 친정마을 친구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02 15:3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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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합천 쌍백면
김호연/합천 쌍백면-새댁 할머니의 보고픈 친정마을 친구들

나는 1남 2녀의 어머니이자 환갑 진갑을 다 지낸, 손자 손녀를 4명이나 둔 할머니이다. 큰 손자는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런데 요새 신혼 때 듣던 새댁이라는 호칭을 다시 듣는다. 원 고향이 농촌인데 결혼하자 남편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40여 년 간 부산과 시골을 오가며 살다가, 장남인 남편이 정년퇴직하자 바늘 가는데 실가는 격으로 남편 따라 시댁으로 다시 귀농한 것이다. 그런데 여느 농촌처럼 시댁의 마을엔 젊은이와 어린이가 드물어 환갑을 지낸 내가 어린 축에 속하는지 연로하신 마을 할머니들은 나를 애교로 ‘새댁’으로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어색하더니만 지금은 새댁이란 소리에 오히려 젊어지는 듯하여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시골에 살다보면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점도 많다. 맑은 공기는 기본이고, 집 마당의 텃밭에서 손수 재배한 청정 채소로 식사를 할 수 있고, 밭에 가면 언제든지 할 일이 있어 일을 하다 보니 운동도 돼 병원에 가지 않아 좋다. 또 친정이 가까워 아흔이 넘은 연로하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뵐 수 있는 것도 위로가 되고, 무엇보다도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을 보노라면 그 오묘한 섭리에 감탄이 되고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눈을 감으면 그 동심은 추억의 배를 타고 단발머리 어린 소녀 시절로 거슬러 노를 젓는다.

내가 태어난 곳은 농촌 면 소재지에서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산골이다. 골짜기가 좁아, 초행인 길손은 더 안쪽에는 아무런 마을이 없는 줄 알고 되돌아가는 이가 많다고들 할 정도로 좁다. 하지만 그 좁은 골짜기를 조그만 더 가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의 친정이 있다. 마을 이름은 귀바위, 이암 또는 샛담이라고 한다. 귀바위는 마을 앞산에 사람의 귀 모양 같은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한자로 표현하면 이암(耳巖)이 된다. 그런 마을에 언젠가 불이 크게 나 집들이 다 타는 바람에 1키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하여 샛담이라고도 한다.

마을 뒷산에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고, 사람들은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 왔다. 앞산은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것처럼 길게 뻗어 있어 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사계절은 각각 다른 한 편의 수채화를 선물한다.

먼저 봄의 전령은 노란 산수유다. 잎이 나오기도 전에 꽃부터 피우는 첨병이다. 봄이 오면 마을 주위 논에는 겨울을 견딘 보리가 초록빛으로 변해간다. 이때부터 농부들도 바빠지기 시작하고, 조용했던 들판에는 생동감이 솟는다. 그러면 아이들도 덩달아 뛰논다. 버들강아지도 따먹고, 찔레 순도 꺾어 먹고, 진달래 꽃잎의 경우 서로가 얼마나 많이 따먹었는지 푸른색으로 된 염색된 혓바닥을 보고 깔깔거리기도 한다.

오월에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하고, 그것도 부족해 꽃송이 채 튀겨 먹기도 한다. 속에 펴지는 향과 바삭거리는 소리가 일품이다. 목화가 피기 전 열매를 다래라고 하는데, 그 열매를 씹으면 그 달짝지근한 맛이 어찌나 좋은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여름의 추억은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에서도 일어난다. 냇가의 다슬기를 누가 많이 잡는지 내기도 하고,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무서움도 잊고 정신없이 가재를 잡던 경우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한번은 언니들 따라 멱 감으로 갔는데, 언니들이 바위에 올라가 다이빙 하는 것을 보고 멋있다 생각하여 몰래 따라 뛰어 내리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다시 눈을 뜻을 땐 “안 죽고 살아났네...”라며 눈물 짓던 어머님을 보면서 엉엉 소리 내 울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여름은 모기와 파리들과의 전쟁이요,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는 불편도 있지만, 어쩌다 시원한 수박이나 복숭아를 먹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기만 한 어린 시절이었다.

가을이면 산촌은 풍요롭다. 오솔길에 국화꽃이 곱게 피고, 연분홍 코스모스도 수줍은 모습으로 오가는 사람을 맞이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들판의 벼는 황금물결을 이루고, 밤, 대추, 감 등 과일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익어갈 땐 부자가 되는 느낌이다. 농부들의 사각사각 벼 베는 소리도 좋고, 벼 이삭 줍기, 논 고동 잡기 등에도 추억이 서려 있다. 양지바른 비탈 산에 목화솜 뽑으러 갈 땐 내 맘도 뭉게구름처럼 날고 솜처럼 포근해진다.

첩첩 산골에 겨울은 춥다. 그러나 아이들은 잠시도 집안에 있지 않고 놀기에 바쁘다. 나무 스케이트 타기, 빙판위에서 팽이돌이기, 자치기 등 자연산 온갖 오락이 아이들을 유혹한다. 눈이 오면 눈사람도 만들어 서로 잘 만들었다고 자랑하고, 겨울밤이 길다 하여도 따뜻한 안방에 앉아 오순도순 얘기하다 보면 길지가 않고, 고구마, 홍시 등 간식은 꿀맛 그 자체였다. 모든 것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방울방울 생각난다. 지금은 기후 변화 때문인지 스케이트 타며 노는 아이들 자체가 보이지 않고, 입학생이 적어 초등학교가 폐교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을 땐 우울해진다.

이처럼 추억은 새록새록 그리움으로 다가오는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 벌써 예순의 중턱에 서 있다. 그 옛날 어린 시절, 마을에 같이 놀던 친구들은 결혼 등으로 어디론가 흩어져버리는 바람에 고향 산골에서는 얼굴보기 힘들다. 고향 떠난 친구들 중에는 벌써 유명을 달리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비보도 간혹 들려온다.

나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詩)처럼, 기억을 더듬어 한사람씩 불어본다. 동선, 숙희, 말임, 의남, 순이, 국자, 복순이 그리고 머슴아들....... 논어에는 “유봉 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했다. 먼 곳으로부터 친구들이 오면 얼마나 즐겁냐는 뜻인 것 같다. 이 즐거움을 위한 모임을 누군가 마련하지 않으면 할머니 새댁인 나라도 나서야겠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자리를 만들어 함께 놀았던 옛 추억을 회상하고, 그 동안 못 본 친구들의 안부라도 물어보기 위해서라도 멍석을 깔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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