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산골 동네 어린 목동들의 이야기
기고-산골 동네 어린 목동들의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09 15:2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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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합천 쌍백면
김호연/합천 쌍백면-산골 동네 어린 목동들의 이야기

농촌에 살다 보면 자연과 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비를 맞으며 씨를 뿌려야 하고 한더위도 적당히 즐겨야 진정한 농부가 될 수 있다. 가뭄이 계속되어 농작물이 타 들어가면 보기가 안쓰럽고 때로는 하늘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러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는 고마움 그 자체다. 농부는 농사를 잘 지어야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농부도 잘살고 싶다. 다행이 대출을 받아 비닐하우스를 짓고 특용 작물 재배로 성공하여 자녀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는 운 좋은 농부의 얘기도 들리긴 하지만 부자의 꿈을 안고 비육우(肥肉牛) 축사를 지었지만 빚만 남긴 채 마을을 떠났다는 슬픈 얘기도 들린다.

어릴 적 내 고향 농촌에는 들판이 없는 산골이라 겨울에는 소죽을 끓어 주었지만, 풀이 있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마을 근처 이 산 저 산으로 동네 소들을 방목했다. 소들 가운데는 어미 소도 있고 귀여운 송아지도 있으며 간혹 황소나 검은 소도 있었다. 마을의 소들은 떼를 지어 야산이 전용 초지인양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었고, 비탈진 곳도 가리지 않고 다녔으므로 소는 운동도 하게 되어 1석 2조의 효과가 있었다.

어른들은 다른 종류의 일에 매달려야 했기에, 소를 치는 일은 초등학생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주요 의무는 집에 있는 소를 몰아 야산으로 올려 보내고 난 후, 소들이 야산에서 이동하는 보폭에 맞추어 아이들은 산마루 주위의 전답을 따라 이동하면서 소들이 농작물을 헤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후 해가 지면 집안으로 소를 몰고 오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이들을 혹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린 목동들은 소치는 일이 결국 싫지 않은 눈치이다.

축사우리에 갇혀 살고 있는 소들을 보면 연민의 정이 간다. 어릴 적 내 고향 산골에는 풀이 없는 겨울에는 소죽을 끓어 주었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마을 근처 이산 저산으로 옮겨 다니며 동네 소들은 떼를 지어 자유롭게 풀을 뜯던 모습이 행복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바쁜 농사일 하느라, 소를 치는 일은 주로 초등학생들이 맡아 목동이 된다. 소치는 목동들은 짬이 나면 각종 놀이의 삼매경에 빠진다.

여치와 배짱이들이 구슬프게 울어대고 나무 가지에 매미 우는소리 들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소들을 풀이 많은 곳에 몰아놓고 산 넘어 다른 동네 목동들과 만나서 공기놀이 시합도 하고 돌 차내기, 소고삐로 줄넘기도 하며 신나게 놀았다. 여름 방학이 되면 소를 몰고 야산에 가서 하루 종일 풀을 뜯게 했다.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시계는 없고 학교에서 배운 해시계를 만들어 실험 해볼 기회가 온 것이다. 평평한 땅바닥에 원을 그려서 아라비아 숫자를 써넣고 매끈한 나무 꼬지로 원 중앙에 꽂아두고 해시계를 만들어 관찰했다. 그림자가 제일 짧고 중앙에 있으면 12시로 알고 아이들은 소들 목에 감아둔 고삐를 풀어 나무에 묶어두고 점심을 먹으러 가곤했다. 넓은 바위에 앉아 숙제를 하고 또 곤충 채집 한다고 여치, 매미를 잡아서 알코올을 몸속에 넣어서 말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깜짝 놀라 소들을 찾아보니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목동들이 소 찾으려 여기저기 다니다가 산자락에 있는 아랫마을 사람이 경장하는 밭에 들어가서 콩잎과 고구마 잎을 뜯어 먹어서 큰일이 났다. 아마 소들은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먹음직 서러워 보였는지 밭에 들어가 맛나게 뜯어먹은 것 같다. 이튿날 경작인이 올라 와서 밭농사를 망쳐 놓았으니 배상을 해달라고 야단이었다. 우리는 겁에 질려 간이 콩알만 했고 부모님들은 다음부터 각별히 주의 시키겠노라고 사정사정을 해서 인지 아니면 아래 윗동네라 서로 친분이 있는 탓인지 그날 일은 무사히 넘어갔다. 간혹 도시락을 가지고 소를 몰고 산으로 간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밥 먹다 흘린 멸치를 개미가 물고 가려다 무거워서 포기를 했는 줄 알았는데 다른 개미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더욱 신기한 눈으로 관찰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못 끌고 가던 멸치를 세 마리 네 마리씩 힘을 모아 끌고 가는 것이다. 개미들도 힘을 모아 서로 협동 하는 모습에 신기하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아이들은 망개 열매를 따서 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감각이 있는 애들은 파란, 빨간색으로 조화롭게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집에 있는 동생들에게 목에 걸어주면 정말 좋아 한다. 그러던 하루는 소가 새끼를 낳으려고 그러는지 풀도 뜯어먹지 않고 하늘을 처다 보며 울고 있다. 엉덩이 있는 곳에서 물 같은 게 흘러내리고 어미 소가 크게 소리 내어 우는데 송아지가 미끄러지면서 땅으로 뚝 떨어졌다. 어미 소가 혀 바닥으로 송아지의 분비물을 깨끗이 활타 주는데 어린마음에 더럽기도 했지만 짐승들도 저렇게 자기 분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보호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산기슭에서 서로 마주보며 실뜨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위에서 큰 돌이 굴러 엄청 빠르게 내러 오는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우리는 재빨리 피했지만 그러지 못한 여자 아이 등을 치고 말았다. 돌에 맞은 아이는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높이뛰기 하는 것처럼 뛰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무섭고 겁에 질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한 아이가 마을에 달려가서 아이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얼마나 다쳤는지 학교 결석을 하고 오랫동안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돌에 맞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허리가 아파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대자연이 친구이고 놀이터도 되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했다.

그때 같이 뛰놀며 놀았던 목동들은 이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 손녀 재롱에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겠지?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의 각종 프로그램에 빠져 친구들과 우정의 대화도 나눌 시간도 없을뿐더러 친구들 사귀는 여유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조금 궁핍하게 살기는 했지만, 옛날 그 시절이 우리들은 집단으로 지냈던 소중했던 추억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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