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맑고 푸른 피 한 잔
도민칼럼-맑고 푸른 피 한 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24 15: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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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맑고 푸른 피 한 잔

노골적 홍보라는 말이 있는데 노골적인 초대장을 내밀며 이원규시인의 시 한편을 올린다.

섬진강 달빛 차회 / 이원규

날마다 밤마다 섬진강의 동쪽 하동에서 /해가 뜨고 달이 떠오릅니다 /아침 햇살은 그대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희푸른 달빛은 내내 그대의 영혼을 비춥니다

맨 처음 그대를 만나던 날 /평사리 청보리밭은 하루 종일 술렁이고 /생각만 해도 입속에 침이 고이는 /그대가 나의 신맛이었을 때 /온 동네 청매 홍매 백매는 피고지고 /눈빛 마주치는 가지마다 시큼한 매실이 익어갔지요

그러나 어인 일인지 /흐린 날의 초저녁부터 휘이 퓌이- /마치 혼이 빠져나가듯 검은 숲에서 호랑지빠귀가 울고 /귀를 막아도,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그대가 나의 쓴맛이었을 때
형제봉 철쭉꽃밭은 붉은 상사병으로 더욱 번지고 /신열의 이부자리엔 쓰디쓴 씀바귀만 자랐지요

아아, 그러다 그러다가 /마침내 빨간 물앵두가 익어가던 날 /그대가 나의 단맛, 나의 달콤한 맛이었을 때 /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열려 /신록의 산바람 강바람이 불고 /형제봉 활공장에선 패러글이더가 새떼처럼 날아올랐지요

그러나 다시 그대가 나의 매운맛이었을 때 / 자꾸 입술이 부르트고 혓바늘이 돋아 / 평사리 무딤이 들녘에선 까마귀 떼가 울고 / 그대가 나의 짠맛, 짜디짠 맛이었을 때 / 눈물의 수위는 자꾸 높아져 / 하동포구에서부터 바닷물이 역류했지요

그랬지요 이를 어쩌나 어쩌나 /밤새 달빛 이슬 내리는 평사리 백사장을 걸으며 / 발자국으로 그대의 이름을 쓰고 또 쓰다 보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대가 나의 단 한 가지 맛이었을 때 /그것은 진정 사랑이 아니었으며 /그대가 나의 단 한 가지 맛이기를 강요했을 때 / 열정과 고통과 절망마저 한갓 미몽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그대는 이미 나의 다섯 가지 맛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모두였다는 것을! /그대는 나의 산(酸), 고(苦), 감(甘), 신(辛), 함(鹹)이요 /그대는 나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였다는 것을! /그대는 마침내 나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이요 /우리 모두의 지리산 수제 작설차요, 하동 야생녹차였다는 것을!

밤마다 섬진강의 동쪽 하동군 /악양고을의 칠성봉에서 달이 떠올라 /섬진강을 비추고, 그대의 영혼을 비춥니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 평사리 백사장에서 / 목욕재계하듯이 달빛 사우나를 하며 / 그대를 마십니다 /그대 영혼의 맑고 푸른 피를 마십니다 /오월 신록의 청람(靑嵐), 푸른 기운를 마십니다 /그대를 마시며 기꺼이 사랑의 노예가 됩니다 /그대를 마시며 기꺼이 절절한 그리움의 하인이 됩니다.

몇 년 전 하동야생차문화축제의 제1회 티블랜딩대회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커피만 블랜딩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녹차와 만나는 또 다른 차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5월10일부터 열리는 야생차축제에서도 13일 아침 10시부터 티블랜딩대회 사회를 맡기로 했다. 누구나 와서 차를 시음할 수 있는 시간, 더 길게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한 잔의 차를 자신에게 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도 세상도 다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맑고 푸른 영혼의 차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이 다 가뿐해질 수 있는 시간 맞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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