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신 보릿고개
아침을 열며-신 보릿고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01 15: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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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신 보릿고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신록의 계절이라 불리는 4월에 만물이 찬란하게 움튼다면 5월에 는 온갖 만물이 왕성하게 뻗쳐오르며 벌 나비가 훨훨 생기 있게 날아다니는 계절이어서 그런가 보다. 또한 가정의 달로서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고, 부부의 날도 있고, 올해엔 부처님 오신 날도 들어 있으며, 먹고사는 근본적인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위한 근로자의 날도 들어 있다. 가정과 국가사회의 근본을 기리는 모든 날들이 5월에 몰려 있다. 이래저래 5월은 분명히 계절의 여왕이다.

하지만 5월은 또한 조마조마 가슴 졸이는 달이기도 하다. 5월의 이 모든 날들 마다 제대로 사람 구실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그만큼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다. 하여 있는 사람들이야 5월이 풍요로운 계절의 여왕일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하염없이 한숨만 내뱉는 계절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저 듣기 좋은 말로 마음만 전하라고 하고 마음만 전한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 그저 공허한 빈 소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리하여 예부터 전해오는 말에 4-5월을 춘궁기(春窮期), 즉 봄에 나물 먹고 물 마셔서 물배만 채우며 봄을 넘겨야만 하는 지독하게 서럽고 배고픈 보릿고개라는 말도 있다. 찬란하고 왕성한 봄날이 가슴 떨리고 신선하여야 함에도 배가 고파 서러워 가슴 떨리는 날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특히 소득수준 3만 달러 이상인 나라에서 오히려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하소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작금의 세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서 마냥 손 놓고 넋 놓아 있을 수만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지나치게 한 쪽 방향으로만 치우치는 것도 위험하다. 한쪽으로 지나쳐 정도(正道)가 무너지면 민심은 떠나고 배는 가라앉고 만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언론에서는 이 먹고사는 문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일거리가 없다, 장사가 안된다. 은행 빚만 늘어난다. 이자 감당이 안 된다.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취업이 안된다…’는 등등 먹고사는 일들에는 우울한 소식들뿐인데 정치권에서는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도 케케묵은 색깔론이 먹혀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하는 회의가 한참 든다. 권력으로써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비전과 철학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권력 쟁취 장악 구도에만 온 목을 빼어 놓고 있다. 이러니 지금 우리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들 한탄한다.

‘인권’은 참으로 근본적이고 훌륭한 가치다. 하지만 다른 가치도 여기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가해자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강박관념으로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되고, 사회적 약자의 복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여야 한다는 과도한 집착으로 복지를 구현할 수 있는 생산기반과 근로의욕과 종잣돈을 거덜 내고, 시민권리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과도한 집착으로 공권력은 땅바닥으로 떨어져 짓밟히고, 학생인권을 지켜야한다는 큰 목소리로 교권은 무너진다.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은 미래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민족동질성과 통일이라는 어설픈 환상으로 북한문제에 감상적으로 접근하며, 동서고금의 유사이래 조금의 틈새도 용인되지 않는 외교관계를 그저 의례적이고 낭만적이고 가볍고 경솔하게 접근하여 외교적 균열의 위험에 국민들이 불안하다. 외교적 관계에서 우리가 어떤 실리를 추구하는 지, 우리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하여 나가는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어떤 나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지…이런 여러 말들로 국민들의 마음이 스산하다.

하지만 이 모든 우려의 목소리들 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앞서 말한 먹는 문제다.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삼지만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

국민들의 밥그릇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지 않도록 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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