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환갑에 일러스트레이터칠순을 넘긴 지인이 고민이 있었다. 문학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학자인데 학문적인 고민이 생긴 것이다. 천성이 부지런한 지인은 늙으막에 한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정말이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따라서 성과물도 어마어마하다. 문제는 그걸 다 출판을 해야 제격인데 요즘 같이 출판 불황에 아무리 지인의 고명함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좀 더 재미있는 한자공부를 연구하다 카툰을 곁들이게 됐고 그걸 또 다른 지인이 그리기는 했는데 책으로 출간하자면 일러스트 작업을 해야 했고, 할 사람이 마땅찮았다. 그 작업만 되면 지인의 고민은 해결인데.
고민을 하는 지인을 보는 내 마음이 심히 쨘했다. 지인의 한문관련 그 정성이 알알이 박힌 원고를 보면 더 안타깝다. 저 정도되면 나라에서 교육차원에서 마음것 출간하게 해주어야 된다라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그런 원고를 여기저기 출간의뢰를 하고 거절을 당한다. 나 역시 무명 작가로서 출간의뢰를 하기 위해 출판사를 전전한 서러운 경험이 있다. 오죽하면 스스로 출판사를 개업했을까! 덕분에 내 책은 물론이고 남편과 아들의 책까지 끊임없이 기획이 이어지고 원고가 꾸준히 생산되고 착착 책으로 출간을 할 수 있다. 하다보니 일러스트 작업까지 하게 되었다.
분명히 무모한 승락이기는 했지만 믿는 구석이 없진 않았다. 바로 명문대(?) 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이 그 믿는 구석이었다. "안 돼요. 엄마가 그걸 한다는 건 나에게 배우겠다는 건데 남 못해!" 자기가 믿는 구석이라는 걸 말 안 해도 이미 알아차린 아들이 거칠게 항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요즘 새로 개업한 북카페로 그야말로 눈코뜰 새가 없다. 순하고 귀한 아들의 눈치를 사알살 살피며 히죽히죽 웃을 수밖에. "나 이래뵈도 한글은 잘 알잖아? 일러스트 왕초보를 위한 책 같은 게 없을까? 그러면 아들이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박사님 불싸하시잖아?"
아들은 당장 인터넷으로 안내책을 구입해주었다. 책이 도착하자 나는 당장 읽고 배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급하고 고민됐던지 나는 하루 밤에 책을 다 읽었다. 백문의불여일견, 일러스트용 관련 기기를 구입하고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순하고 착한 아들도 적극적으로 컴퓨터 작동법을 알으켜주었다. 첫날, 색칠공부를 한 결과물을 보고 아들은 우와~ 괜찮네, 칭찬 해주었다. 이에 힘을 입어 안내책에 나온 강아지를 그렸다. 아들이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이 그렇게 소리내어 웃는 건 모처럼 봤다. 아니, 처음인 것 같았다. 창피하지만 함께 웃을 수밖에.
토요일, 초저녁에 잠을 좀 자두었다. 밤을 새서라도 작업을 해야하기에. 다섯 시간 작업. 연필로 원본 본을 떠고 색을 입혀서 드디어 102페이지 중 한 페이지를 완성했다. 제 눈이 안경이라고 제법 알록달록 예뻤다. 그렇지만 아들이 잘 한다고 해주어야 작업에 탄력을 받을 것이었다. 다음 날, 아들이 좋아하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아침으로 먹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작업결과물을 보여 주었다. “어? 괜찮네, 좋아요. 특히 이 백두산 천지, 색감 좋네! 풍경 색감이 탁월하네” 나는 아들이 칭찬해주었다고 외치며 마침 단비가 촉촉히 오고 있는 동네 골목을 막 달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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