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충신 정온과 명의 류의태
진주성-충신 정온과 명의 류의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13 15: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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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충신 정온과 명의 류의태

조선 중기 선비 정온(1569-1641)은 거창사람으로 호는 동계(桐溪), 본관은 초계. 병자호란(1636-1637)때 조정이 항복을 결정하고 인조가 남한산성 성문을 나설 무렵 정온은 칼로 자기 배를 찔렀다. 예순 일곱 살 때였다. 칼날이 6cm까지 들어갔다 튀어나온 창자를 아들이 쑤셔 넣고 배를 꿰맸다. 사흘이 되도록 죽지 않았다. 정온은 “쇠잔한 목숨이 끊어지지 않으니 괴이하다고 인조에게 글을 올리고 낙향했다. 덕유산 자락 ‘이름없는 마을’ 모리(某里)에 살았다. 훗날 1728년 영조때 후손 정희랑이 이인좌와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참수 당했다. 할아버지 정온이 남긴 우국충절은 후손이 지은 죄를 덮고도 남아서 1764년 영조는 정온 후손에게 불천위(不遷位)를 허락했다. 영원무궁토록 제사를 지내라는 뜻이다. 정온의 종갓집인 동계 고택에서는 나라로부터 받은 “문간공 동계 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이라는 현판과 불천위 사당이 남아있다. 선비들 이야기를 모르면 거창여행은 불가능하다. 1714년 추석날 동계고택에서 술을 마셨던 선비 류의태(柳義泰)도 그중 하나다. 1714년 추석 산청에 살던 류의태가 고향을 찾아왔다. 한양에서 숙종임금 병을 치료하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고택에는 정온의 증손자 정중원이 살고 있었다. 류의태의 할아버지 류유도는 정중원의 증조부 정온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정중원이 훗날 이렇게 썼다. “거의 귀밑머리보니 어느덧 하얗게 되었더라” 류의태는 이듬해 죽었다. 예순세살이었다. 류의태는 선비 한의사다. 유의(儒醫)라 한다. 유학자이면서 의학 이치에 통달한 선비다. 두창(천연두)과 마진(홍역)치료에 능했다. 거창에서 태어나 남쪽 산청에서 살았다. 영남과 호남일대에 숱한 전설과 설화를 남겼다. 대충 이러하다.

“…사람 잡아먹은 뱀을 살려주고 타일러 뱀에게 침술을 선물 받았고 닭에게 침을 아홉 개 놓았는데도 여전히 뛰어다녔다”

그 명성이 청나라까지 알려져 청 고종병을 고쳐주고 벼슬을 마다하고 돌아와 의술을 펼쳤다. ‘뱀침 설화’는 거창 위천면 옛 위천중학교 옆 침대룡바위에 쓰여 있다. 명의의 산청 전설 많은 독자는 기시감(旣視感)을 느낄 것이다. 자기 몸을 해부용으로 내놓은 의성(醫聖)허준의 스승 류의태(柳義泰)가 아닌가. 실제로 산청에는 류의태를 기리는 테마파크(생초) 동의보감촌이 있고 류의태 전설이 남아있다. 결론부터 류의태는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허준’속 인물이라 거창에서 태어나 산청에서 활동하고 숙종임금 병을 고치고 의술을 베푼 의사는 류의태다. 죽은 해가 1715년이니 허준보다 100년 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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