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위대한 군인 김영환 장군
진주성-위대한 군인 김영환 장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30 15: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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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위대한 군인 김영환 장군

해인사 입구에는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팔만대장경은 잘 아시다시피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화유산으로 우리 민족의 호국 의지를 알리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또한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는 법보사찰로 우리나라 3보 사찰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토록 소중하고도 귀한 문화유산인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한 군인의 위대한 결단이 없었다면 자칫 없어질 뻔 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퇴로가 막힌 북한군들이 합천 해인사를 점령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던 해인사가 남부군의 지휘부가 되었다. 공군사령부에서 '즉각 폭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이에 1951년 8월 당시 공군 제10 전투비행전대장이던 김영환 장군은 해인사에 숨어든 무장공비 소탕을 위해 해인사를 폭격하기로 하고 출격하게 된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없어지게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해인사 상공에 도착한 김 장군은 리시버에 나직하지만 단호한 일성을 날린다. “요기(僚機)들은 명령이 있을 때까지 나를 따르기만 하라”폭탄 투하 목표지점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서 하얀 연막이 피어 오르고 있었지만 부하들에게 “절대로 폭격하지 말라”면서 전시체제에서 군인의 생명과도 같은 명령을 거부하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켰다.

공비보다는 사찰이 더 중요하다며 사령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폭격하지 않은 김 장군은 상관에게 ‘숲이 짙어 적을 판별할 수 없다’는 이유를 둘러 댔다. 이렇게 전란 중 목숨을 건 김 장군의 용단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소실 위기에서 구해냈던 것이다. 전쟁의 참화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의 정신은 민족의 문화적 수준을 세계에 알린 표상이 되고 있다.

당시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 해인사는 이런 고 김 장군의 공적을 기려 2002년 ‘고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를 해인사 사찰 내에 건립하고, 매년 6월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정부는 아울러 지난 2010년,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수호한 공적을 기려 김 장군을 금관문화훈장에 추서했다. 올해 추모제는 지난 6월 18일 각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려 김 장군의 공덕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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