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일제가 690만명 학살했다
진주성-일제가 690만명 학살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10 16: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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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일제가 690만명 학살했다

일제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부터 1945년 8월 광복까지 조선인 690만명을 학살했다. 학자에 따라서는 800만명을 죽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전봉준·손병희 선생이 이끄는 남북접 동학의병 20만명이 사살되었고 1908년부터 남한대토벌 작전에 수 만명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졌다.

일제의 악랄함이 천하에 나타나 있으나 지금까지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1965년 한일청구권으로 현금 3만 달라와 차관지원으로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식이다.

일제는 1930년대 초기 만주지역으로 쳐 들어가 민간인들을 산채로 생체 실험한 731부대의 악행을 모두 기억한다.

김좌진·홍범도 장군의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제는 만주지역 조선인들을 찾아다니며 무차별 학살하고 불태운 사실도 모두 확인된다.

처녀. 곡물 공출을 위해 근로정신대, 농민회·이장·반장을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곳으로 보내 준다는 감언이설로 동남아로 송출해 제대로 된 월급을 주지 않았고 인간적 대우를 해 주지 않았다.

일제 순사가 온다는 말만 들어도 겁을 먹고 있던 시절에 옆구리에 칼을 차고 때때로 말을 타고 위압적으로 마을 골목을 지나가며 마을 친일파를 시켜 놋그릇 각종 곡물을 공출한다고 하면 내 놓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징병 징용을 독려했으니 형제가 많은 가족은 2명 3명 또는 한명은 필수로 차출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강제동원·강제 입영·강압 차출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본군인. 순사들은 자신들이 대면하지 않고 앞장서지 않고 마을 친일파들을 시켜 간접적으로 강압적으로 독려했기 때문에 강압. 강요의 근거가 없었고 자발적으로 죽음의 길로 나갔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이 차출된 청소년들을 동남아 지역 최전선에 투입되어 성 노예와 총알받이로 이용되었으니 이는 바로 지역 마을 친일파와 일본 순사들. 면서기. 면장들의 공동 횡포가 아니겠는가.
동남아로 잡혀간 청소년 수십 만명, 처녀 수 만명이 근로 보국대·근로 정신대가 되어 70% 이상 죽었거나 부상을 입었다.

중국으로 쳐 들어간 일제는 중화민국 수도 남경(난징)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일반인 30만명을 학살하는 죄악을 자행했다.
필리핀을 함락한 일제는 영국군 포로들을 50~100km 이상 도보로 이동시키다가 낙오자들을 사살하고 참수한 악행도 했다.

1945년 8월 반일인사들. 기독교인들. 독립운동가들 20만명을 가스실에 쳐 넣고 학살하기 위해 명단을 확보해 두었고 시행 일주일전에 일제 왕이 무조건 항복하고 광복이 되었기 때문에 총 700만명 학살의 기록이 무산되었다.

아베 수상은 또 다시 7천만 동포를 위협하고 또 690만명을 죽이기 위해 반도체 등을 앞세워 경제 전쟁을 시작했다. 총독의 직계손이기 때문에 제 2총독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보고 대처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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