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인사동 게바라
아침을 열며-인사동 게바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16 18: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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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인사동 게바라

<인사동 게바라>는 평론가 구중서 선생님의 세 번째 시조집이다. 이 시조집을 내면서 님이 쓴 ‘시인의 말’을 먼저 들어보자. “세 번째 시조집을 엮는다. 인문학 정신의 사명을 생각하는 비평의 작업과 아울러 순정의 박동처럼 시조의 언어를 숨 쉬며 지내게 된다. 민족문학사 안의 자생적 시문학 장르인 시조는 문화민족의 증명이다. 물질화 세계의 인간화 작업에 한국 현대시조의 소명이 있다” 이처럼 간략한 발문도 드문 일이지만 그 간략함 속에 이토록 명징하고도 포괄적인 의미를 담기도 매우 드문 일이다. 그래서 또 읽고 또 읽어도 새록새록 그 뜻이 새롭게 전해진다.

세상에, 팔순을 넘긴 시인이 ‘순정의 박동’으로 시조의 언어로 숨을 쉬며 지낸다고 하신다. 이것이 노시인의 민족시 시조에 대한 마음이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하지 않은가! 참으로, 봄철 진달래 개나리 흐드러진 꽃밭에서 봄볕세례를 흠씬 받은 감동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 노시인께서 그 ‘순정의 박동’으로 새싹처럼 새록새록 돋아나는 시조의 언어로 쓴 시조들이 <인사동 게바라>에 오롯이 들어있다. 그리고 시인은 소곤소곤 외친다. 우리 민족의 근성처럼 은근과 끈기로 이어져온 ‘자생적’ 시조는 물질이 판을 장악한 오늘에 ‘인간화 작업’을 해야 하는 소명이 있다고.

인사동과 게바라,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우리민족의 옛정서가 살아있다고 하는 서울 인사동과 개혁과 혁명의 상징인 게바라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옛것이 좋다고 해도 인간이 소외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아무리 위대한 혁명이라도 인간을 억압해서는 이미 그것은 혁명이 아닐 것이다. 인사동도 이제 현대식 빌딩이 차곡차곡 먹어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민족의 혼만은 사람을 사랑한 게바라의 혁명성으로 새록새록 살아나야 할 것이다. 여기에 시인 구중서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 인사동 게바라는 그래서, 바로 구중서 자신이다.

‘몸의 병 고치는 의사가 되려다 정신의 아픔에 마음을 돌린 이들 중국의 소설가 루쉰 남미의 체 게바라 조선의 서까래 선명한 인사동 예당 카페 벽면에 걸려 있는 게바라 혁명의 눈 감지 않고 제3세계 보고 있다’ 인사동 게바라의 전문이다. 혁명이나 개혁 같은 말은 말만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또한 혁명이라고 해도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혁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우리 사람 속에서 잠시만 방심해도 어깃장을 놓고 훼방을 노는 이상한 속성을 쉼없이 혁신하며 ‘문질화 세계’에 짓이겨지지 않고 매순간 곱고 다정한 우리본래의 인간성을 혁명해가야겠다.

참으로 버거운 복으로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몇 번 구중서 평론가를 뵌 적이 있다. 이번 시조집은 더욱 감사하게도 사인을 해서 손수 주시는 걸 받았다. 이미 유명한 대로 그는 말씀이 몹시도 느리다. 전에는 말씀하기 전에 꼼꼼히 생각하느라 그런 정도로 여겼다. 이번에는 선생님의 어법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의 말을 우선적으로 스스로 꼼꼼히 듣고 철저히 다듬으며 비로소 소리로 내뱉는 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생각하는 동시에 자신의 말을 자신이 들음과 동시에 다듬으며 소리 내어 말로 하기!

대부분 우리는 백 번이라도 생각해서 말을 천천히 해야지 마음먹었다가도 막상 말을 시작하면 놀란 장닭 처럼 외쳐대는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알아차린 어법을 ‘구중서 어법’이라고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어법을 연습하고 따라하자고 마음을 굳게 정했다. 사람은 좋은 인연을 이어야 인생이 잘 풀린다 했으니 좋은 인연이 분명하니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 하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것. 물론 잘 안 될 테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다. 설마하니 뼈가 깎이는 고통만 할까. 어려울 때마다 뼈를 깎이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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