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여학생 치마길이
진주성-여학생 치마길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16 18:18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여학생 치마길이

남녀공학의 모 중학교에서 여학생의 치마길이가 너무 짧다고 이삼학년 여학생들을 대강당에 집합시켜 놓고 치마길이가 너무 짧은 학생에게 야단을 쳤다는 사실을 두고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선생님들은 석고대죄를 하듯이 고개를 숙였다는데 이는 정작 억장이 무너져 가슴을 칠 사람은 스승이시다. ‘소신껏 가르치고 지도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정서가 개탄한다.

자유롭게 자라라 했던 것이 제멋대로 자라버릴까 염려된다. 그 자유롭게는 꿈 많은 청소년들이 이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라는 것이었고 구시대의 산물인 획일적인 통제나 규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 본래의 취지인데 자유가 방종으로 치닫고 있다. “간섭하지 마라”, “기죽이지 마라”, “ 비교하지 마라”, “내 자식은 내가 키운다”다 맞다. 간섭해도 안 되고 기를 죽여도 안 되고 비교를 해서도 안 되며 제 자식 제가 키우는 것도 맞다.

그러나 스승의 지도를 간섭으로 보고, 부추겨 깨달게 함을 기죽인다하고 다양성을 살려 자립심을 키우려는 것을 비교한다고 몰아붙이면 스승은 뭘 가르치나. 시험지에 옮길 정답만을 가르치면 감수성 예민한 성장기에 사회성의 절대적인 요소인 인성교육은 누가 하나. 마땅히 해야 할 도리와 해서는 안 될 것을 하지 않을 수 있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가르쳐 훗날의 인격자로 키워내고 싶은 게 스승이시다.

학생의 치마길이가 지나치게 짧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교복이라는 통일성을 갖추고 있어 기준을 마련한 것이고 이 기준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점검한 것을 문제 삼고 야단들이다. 왜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분란을 일으키느냐고 할 수 있지만 기준은 정도(正道)를 위한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요즘 스승들이 자괴감과 의욕상실에 빠진 것 같아 안타깝다. 학부모들의 막나가는 시달림에 부대낀다.

이 지경에서는 선생님에게도 거부권이 필요하다. 이 학생은 감당하기가 버겁다는 의견서를 내고 다른 선생님이 맡도록 기피신청제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교사의 의무가 학생의 교육인데 무슨 소리야고 할지 모르지만 의무가 주어지면 따르는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짐승을 키워도 애착이 가는데 제자를 키우는 마음은 오죽 하겠느냐며 학부모들이 우선하여 선생님을 믿어야 한다. 제자는 스승의 매의 길이만큼 자란다. 선생님 소신껏 키워주십시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