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아무도 흔들 수 없는 인생
아침을 열며-아무도 흔들 수 없는 인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20 17: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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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아무도 흔들 수 없는 인생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말이 들불처럼 씩씩하게 번지고 있다. 나는 이 말에다 나라를 빼고 ‘내 인생’이란 말을 슬쩍 넣어봤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내 인생, 하고 보면 천천히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를 흔드는 게 너무도 많은 탓이다. 각자의 주의주장들이 다르다보니 가족에서부터 직장이나 이웃들까지도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일에서 쉼 없이 흔들어댄다. 싸우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참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고 설득당하기도 한다. 그토록 많이 흔들리면서도 그게 사는 것이거니 하면서 살아가거나 살아진다.

근데 문재인 대통령이 당당하게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를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괜히 신이 나는 것이었다. 힘들어도 은근과 끈기로 당당하게 살다 간 사람들이 두서없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순신, 간디, 헬런켈러, 퀴리 부부, 윤동주, 박완서, 김대중…이어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창밖엔 장마가 끝나고 이제 햇살이 가을을 준비하느라 노란색을 더하고 있었다. 아직 따가운 햇볕 아래 무성한 나무처럼 나도 조금은 씩씩함을 더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누가 뭐래도 우리가, 우리 서민국민이 만들어야만 한다. 언제나 그래왔고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니까. 내가 주인이니까. 하고 봤더니 내가 무얼? 하고 반문이 저절로 나왔다. 사소한 내가 어떻게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에 기여하지? 하면서도 생각날 듯 말 듯 하는 게 나쁘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설렘이었다. 모처럼 고급한(?) 고민을 한다 싶어서 더 그랬다. 생각날 듯 말 듯한 그것은 오래 시간 끌지 않고 금세 봄날 새싹처럼 퐁퐁 솟아올랐다. 이럴 땐 볼펜과 메모지를 찾아들고 기록을 해야 생각이 또렷한 성과가 된다.

메모지에 넘버링을 해가면서 하나하나 적었다. 우선 주제랍시고 맨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인생에서 비롯된다고 딱 적었다.(맞거나 말거나 기분이 왜이리 좋냐!) 아무도 흔들지 못하게 똑 바로 사는 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렇게 좋다니. 나는 오래 전 청년시절에 공장에 다녔는데 월급날 일주일 전쯤에는 그걸 받아서 뭐에 얼마 쓰고 무엇에는 얼마를 써야겠다는 계산을 하느라 참 즐거웠었다. 자칫 방 월세는 얼마, 고향집엔 얼마, 동생들 용돈은 얼마, 이번엔 선물도 사자.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아무도 나를 흔들지 못하게 하려면 스스로 똑바로 서야한다. 먼저 집안일을 할 때 내가 한 일을 다른 가족이 또 하게 만들지 않고 내 손에서 그 일을 끝장낸다. 이웃에겐 우선 인사를 해서라도 만나는 그 짧은 순간에라도 기분 좋게 해드리자. 돈 받고 하는 일이라도 이왕이면 기분 좋게 하자. 택배 알바를 할 때 선물을 전달하는 마음으로 하자. 그래도 욕 나오게 심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주 깊은 마음속으로만 욕을 아주 조금만 하자. 나는 부처님을 따르니까 어떤 글을 쓸 때에도 불성으로 쓰자. 이번 추석엔 어머니 용돈을 기어이 조금이라도 올려드리자.

그래도 나를 흔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땐 어떡해? 그때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저기 저 나뭇잎처럼 살살 흔들리지 뭐. 몸통은 그대로 꿋꿋이 한 채 말이지. 누군가 나를 “넌 별볼일 없어”라고 말하면 속으론 오래된 나무둥치처럼 마음을 다잡으며 이파리만 흔드는 기분으로 배시시 웃을까? 너무 굴욕적인가? 흔들리지 않기 참 어렵네. 어렵겠지. 그러니 그 겉 순둥이 대통령께서 주먹을 불끈 쥐셨겠지. 그러자, 겉으론 순둥이로 안으론 깡으로 끝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내 인생으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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