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낫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고 싶다
기고-낫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고 싶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22 17:2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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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남희/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공남희/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낫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고 싶다

지금은 건강이 좋지 못해 더 이상 나의 보살핌을 받지 않고 계시지만, 2015년 3월 보훈섬김이로 처음 보살펴 드린 이반성에 홀로 사셨던 어르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첫 방문 때 어르신은 내가 불편하신지 말씀도 없으시고, 혼자 밖으로 나가셨다가 내가 갈 시간이 되어서 들어오셨다. 방에 계셔도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당신 자신이 불편해서 그러신다고 하시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어르신과의 어색한 만남이 지속되던 어느 날 술을 드신 어르신은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셨다.

50세가 넘은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지 4~5년이 되었는데 연락 한통 없고 할머니가 죽었을 때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 항상 작은 아들을 걱정하던 할머니를 외롭게 보냈다고 하시면서 우셨다. 그러면서 작은 아들에 대한 걱정에 넋두리를 하시는데 도와 줄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어르신의 손만 잡아드렸다. 그게 어르신한테는 큰 위로가 되셨는지 그 뒤로는 제가 가면 밖에 나가시지도 않으시고 나에게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길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식도 없던 작은 아들이 불쑥 집에 돌아왔다. 어르신은 “아들이 같이 살면 아지매가 우리 집에 오면 안 되지요?”하고 조심스럽게 물으시면서 “사무실에는 아들이 왔다는 이야기 하지 말고 아지매가 오면 안 되겠소? 쟤는 또 언제 나갈지 모르는 사람이니”하셨다.

어르신께 걱정하지 말라고 사무실에는 잘 말씀드려 계속 올 거라고 안심시켜드렸지만 복지사님께 이야기도 없이 아들이 있는데 계속 방문을 한다는 것도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복지사님께 사정 이야기를 하고 당분간 방문을 하면서 상황을 봐서 중지를 해 달라고 부탁 했다.

내가 방문을 해도 아들은 자기가 자는 작은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어르신 드실 반찬을 해 놓으면 하루 만에 반찬이 없어 다음 방문에 또 시장을 봐 간다. 혼자 계실 때 보다 돈도 많이 들고 신경을 써야 할 것도 많지만 그래도 어르신은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행복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작은 아들과의 행복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며칠 되지 않아 아들은 아무 말도 없이 또 집을 나가 어르신은 속상한 마음에 술만 드셨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해 넘어져 상처도 생기고, 옷에 실수도 할 때가 있지만 어르신의 마음의 상처가 깊다는 것을 알기에 어르신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넘어진 상처에 연고를 발라 드리고 실수한 옷을 갈아 입혀 드리고 저녁상을 차려 놓고 꼭 드시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의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갔다.

어르신께서는 나를 많이 의지하시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딸처럼 속마음도 이야기 하셨다. 어느 겨울날 어르신께서는 추운데 온다고 고생했다면서 언 몸을 녹이라고 아랫목을 내어주시더니 아무 말 없이 검은 봉지를 내미셨다. 열어 보니 예쁜 장갑이 들어 있었다. 비싼 가죽장갑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다. 감사해서 비싼 가죽장갑보다 100배 더 좋다고 말하니 빙그레 웃으셨다. 반성 장에 가시면 당신은 드시지도 않는 도넛을 사와 내가 가면 먹으라고 내 놓곤 하셨다.

이런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어르신께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실 때까지 보살펴 드리고 싶었고 낫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 달리 너무나 쇠약해지신 어르신은 더 이상 제 손길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마지막 방문에 어르신께서는 아무 말 없이 당신이 먼저 제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러 어르신 댁을 방문하고 있다. 일이 힘들고 지칠 때 어르신께서 주신 예쁜 장갑을 꺼내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는다. 낫지 않는 어르신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자고…오늘도 나는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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