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문화의 힘(1)
아침을 열며-문화의 힘(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25 15: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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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문화의 힘(1)

여유시간에 바이두의 기사들을 뒤적거리다가 ‘홍루몽’(红楼梦)과 ‘임대옥’(林黛玉)이라는 글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중고등학생 시절 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못지않게 좋아했던 작품과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내 청춘의 일부였다. 읽어보니 마치 논문을 방불케 하는 분석기사였다.

그녀의 거처였던 대관원 내 ‘소상관’, 그 이름에 이미 그녀가 맞이한 죽음의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는 둥 어떻다는 둥, 어떻게 보면 별 중요치도 않을 그냥 흥밋거리를 너무나도 진지하게 파헤치고 있었다. ‘한갓 소설이건만…’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착은 예사롭지가 않다. (그것에 관한 이른바 ‘홍학’(紅学)이 따로 있을 정도다. 베이징 시내엔 홍루몽의 배경인 ‘대관원’(大观园)도 테마파크로 조성돼 있다.) 조금 살펴보니 이 기사는 시리즈물 같았다. 작품의 또 한 축인 “설보채”에 관한 기사도 있었고, 주인공도 아닌 “가원춘” “왕희봉”은 물론 별의별 주제가 다 있었다.

이 바이두의 기사뿐만이 아니다. 1967년에 상영돼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홍콩영화 ‘스잔나’(珊珊 Susanna)에서도 주인공 ‘리칭’(李菁)이 극중에서 연극 홍루몽의 임대옥 역을 연기하다가 그 죽음 장면에서 실제로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영화를 보던 날 나는 나무나 가슴이 아파 잠을 잘 이루지 못했었다. 홍루몽은 그냥 영화 속 한 장면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수많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2010년의 ‘신홍루몽’은 특히 수작이라 그 전체 45편을 나도 홀린 듯이 시청했었다. 설보채 역의 배우 ‘리친’(李沁)은 워낙 예뻐 한국에서도 인기가 상당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기사들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홍루몽이 중국 것이었구나.” 무슨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만 새삼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그것이 처음부터 국경을 초월한 ‘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임대옥도 설보채도 가보옥도 모두 ‘나의 인물들’이었지 그 누구도 ‘중국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인 ‘금릉’도 굳이 중국땅이 아니었다. 현지에서 그걸 다시 접하며 나는 이른바 ‘문화의 힘’을 다시 느꼈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가 그럴 것이다.

중국문화가 우수하다는 선전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른바 ‘별그대’나 ‘태양의 후예’ 같은 한드도 중국에서 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것 같다. 송송커플의 동영상(视频)은 어쩌면 한국보다 이곳 중국에 더 많을지도 모를 정도다. 그들의 파경소식도 한국 못지않게 떠들썩했다. 이곳 매체들에 등장하는 한국관련 기사는 정치나 경제보다 연예관련이 훨씬 더 많다. 중국에 오래 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리양보 같은 것도 예전엔 없었는데 한드의 유행 이후 조금씩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한드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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