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살의 분석(6)
칼럼-자살의 분석(6)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02 15:0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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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자살의 분석(6)

옛날에 중국에서는 신분이 높은 자가 사형선고를 받으면, 황제는 그에게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하든지 자살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교수형을 택한 경우, 사형수는 포박당한 채 책상 위에 올라가 둥근 교수형 밧줄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그러면 집행자가 책상을 잡아 뺀다. 자살을 택한 경우, 사형수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황제가 직접 건네주는 죽음의 도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황제가 건넨 죽음의 도구란, 독약 봉지, 금박, 노란색이나 흰색 교살용 끈이다. 사형수는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다. 금박을 이용한 자살은 아주 얇은 금을 입에 넣고 흡입하면 금박이 목구멍을 막아 호흡이 막혀서 죽게 된다.

만리장성을 축성한 진시황은 점술, 의학, 농업 관련서만 제외하고 모든 책들은 태워버렸다. 특히 맹자나 공자에 관한 책을 소장하고 있는 자는 관청에 제출해야 했고, 제출된 서적들은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맹자나 공자를 논하는 자는 일족을 멸하고 이를 처벌하지 않는 관리도 사형에 처했다. 또한 법령이 선포된 날로부터 한 달 이내에 서적을 제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만리장성에서 4년간 노역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엄격한 법령 때문에 중국에서는 수천 명의 학자와 철학가, 작가, 예술가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또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내린, 공자를 신봉하던 600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익사했다고 한다.

30세의 미스 차북은 미국 TV방송국의 인기 여성 아나운서였다. 1947년 어느 날 생방송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던 중 갑자기 “저희 채널 40은 핏자국이 선명한 영상을 항상 생생한 컬러로 내보냈습니다. 그 전통을 더욱 빛내기 위해 오늘 여러분에게 최초로 자살 영상을 공개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천천히 권총을 꺼내어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연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인도에는 19세기 초까지 ‘사티’라는 끔찍한 풍습이 있었다.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도 장작불에 몸을 던져 남편을 뒤따르는 순장(殉葬)제도이다. 1829년 영국에 의해 겨우 금지되었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그 풍습을 전해주는 비석이 인도 전역에 퍼져 있는데, 가장 오래된 비석에는 서기 510년이라고 적혀 있다.

‘사티’풍습은 주로 갠지스강 유역과 펀잡 지방, 남인도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산 제물로 희생되는 여성은 한 번에 한두 명이 보통이지만, 1780년에 조드푸르의 영주가 죽었을 때는 64명의 여성이, 남인도의 영주가 죽었을 때는 만 천 명의 여성이 순장되었다고 한다. 방법도 다양하여 남편의 시신에 묶여 장작 위에 올려 진 아내도 있고, 남편의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스스로 불을 붙인 아내도 있다. 이때 아내가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것을 불길하게 여겨 그곳에 모인 군중들은 그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불경을 외워댄다. 때로는 멀리 떠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가 스스로 장작불에 뛰어들기도 했는데, 나중에 남편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순정적인 아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대로 순장을 거부하는 아내도 있었다. 1796년 캘커타 근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아내가 ‘사티’풍습에 따라 장작 위에 묶여 있다가 어두운 밤이 되자 밧줄을 풀고 도망쳤다. 당황한 가족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 찾아냈다. 그녀가 ‘사티’풍습을 따르지 않으면 일가의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장작 위로 올라가든지 익사하든지 목을 매든지 하라고 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들은 다른 식구들과 함께 어머니의 손발을 묶어 장작불에 던져 버렸다. 이런 풍습은 어머니가 죽으면 자식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다든지, 남편이 없는 세상에서 비참하게 사느니 그 뒤를 따르는 편이 행복하기 때문이라느니, 남편이 내세에서도 반려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느니 하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었다. 1829년에 마침내 인도를 점령한 영국은 ‘사티’풍습을 용납할 수 없는 살인행위로 규정해서 법률로 금지시켰다.

6회에 걸쳐 자살의 분석을 끝맺음한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미래를 성찰하는데 도움에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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