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한은 우리를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
시론-북한은 우리를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16 16:1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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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
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북한은 우리를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5일 유엔총회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러자 북한은 10월 8일 이를 ‘범죄 정체를 가릴 목적’이며 ‘용서못할 배신행위’라 비난했다. 비무장지대는 6·25 전쟁으로 그어졌고 그 전쟁은 북한이 도발한 것인데, 누가 누구의 ‘범죄 정체’를 가린다는 것인지 유체이탈 화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8월 16일 조평통 대변인 담화에서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며, 그 전날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상상 초월의 언어로 작심 비난했다. 특히 문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뻔뻔스러운 사람’,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 읽는다’며 막말했다. 8월 11일 북한 외무성은 한낱 국장 명의의 담화로 문 대통령을 ‘바보’, ‘똥’, ‘악취’ ‘개’, ‘횡설수설’등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으로 폄하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북쪽은 우리와 쓰는 언어가 다르다”며 너그러이 넘어가며 대북 구애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정부때에도 북한의 대남 비난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정부여당은 ‘평화경제’를 강조하며 매번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며 언행을 조심하는데, 북한은 왜 이리 안하무인의 고압적 대남 태도를 보이는가? 그 까닭은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추론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 대한 자신감이다. 핵무기를 완성하고 대륙간탄도탄(ICBM)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으로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운반수단도 확보했기에, 이제는 공격받을 위험은 없다. 더 이상 미국이 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은도 이루지 못했던 미국 대통령을 벌써 세 번이나 만나는 위업을 달성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정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통미봉남이 주효한 것이다. 없을 때도 죽을 각오로 이판사판 벼랑끝전술로 버텼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해볼 테면 해봐라 는 식이다. 그래서 체제보장을 조건으로 핵폐기에 응할 까닭도 없다. 이미 체제보장을 이뤘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에서 바야흐로 우위에 섰다는 자신감이다. 핵위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오히려 압력도 행사하고 ‘상납’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의 통치술은 덕치에 기반하지 않는다. 공포와 공개처형 등으로 가혹하게 다룬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막말하며 막 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여당은 대꾸조차 못한다. 뭐라도 반발하면 과거 북한에 대해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노죽(알랑방귀)을 부렸다”며 협박한다. ‘조적조’처럼 과거가 현재를 붙잡아 그동안의 행적과 발언이 꼬투리가 되는 법이다. 없던 일도 부풀려 폭로할 본새이다. 그래서 북한이 우리를 아무리 함부로 대해도 우리 정부와 좌파사회는 반발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고 있다. 김정은의 눈에 남측은 동등한 대화상대가 아니다. 아랫사람 대하듯 한다. 그래서 경제지원을 조건으로 핵폐기에 응할 까닭도 없다. 경제지원이 아니라 언제라도 ‘상납’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파기 정도이다.

이제라도 우리의 대북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상대가 우리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어른의 자세로 포용한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종교 지도자의 존경스러운 태도일 수 있지만,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국가 지도자의 정책일 수는 없다. 북한은 “똥, 꽃보자기 싼다고 악취 안 나냐”며 우리를 조롱한다. 한미관계를 비난한 것이나 이래저래 문제가 생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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