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일미칠근(一米七斤)
진주성-일미칠근(一米七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27 14: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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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일미칠근(一米七斤)

불가에서 수행을 할 때 일미칠근(一米七斤)의 정신으로 정진을 하라는 말이 있다. 일미칠근은 한 톨의 쌀을 생산하는데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일미칠근은 수행자가 먹는 쌀 한 톨의 무게는 일곱 근이나 나가서 중생을 구제하려는 큰 원력으로 내실 있게 수행하지 않으면 그 은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경책이다.

한자의 쌀 미(米) 자를 파자하면 ‘八十八’이 된다. 쌀 한 톨에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간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볍씨를 파종해 모를 길러서 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수확을 해서 방아를 돌려 찧어서 생산되는 한 알의 쌀이 웬만한 공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쌀농사를 지으면서 농부가 흘리는 땀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농부는 하늘도 못 막는다는 부지런한 공으로 산다. 게으름을 피우면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없는 법이다.

노납은 공양을 할 때마다 버릇처럼 일미칠근을 마음속으로 새기거나 내뱉고 있다. 이는 일종의 버릇인데 내게는 꽤나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오래 전 수행 길에 올랐을 때 몹시도 배를 곯은 적이 있었다. 마침 한 집에서 끼니는 채우려 했는데 문득 손이 귀한 집인 그 댁의 귀염둥이로 자란 외동아들이 투정을 부려 휘저어 놓은 밥그릇을 버려야겠다는 그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배고픔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일미칠근 인데”라고 내뱉고 말았다. 그 후부터 습관적으로 이 말이 입에 붙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요즘 쌀 한 톨의 의미를 너무 가벼이 여긴다. 가정이나 식당이나 할 것 없이 제대로 먹지 않고 버려지는 밥이 부지기수다. 1년 내내 휘어지는 등뼈를 고쳐 세울 사이도 없이 들판에서 힘들게 일하는 농부가 쌀 한 톨에 사랑의 값을 저울질 한다면 그처럼 쉽게 밥을 버릴 수도 없을 것이다. 소출이 변변치 않아서 나락 이삭을 주우러 다니던 어르신들의 노력과 쌀이 모자라 쌀 막걸리는 만들지 못하도록 하던 때도 추억으로만 남았다.

서글픈 일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밥알 하나, 밥 한 그릇에 몇 명의 입이 연명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중에서는 끼니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쌀이 갖는 의미는 바로 생명을 잇는 수단이다. 절에서는 매번 공양을 받으면서도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하는 데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밥을 먹게 해준 사람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이다, 쌀 한 톨의 소중함을 모두가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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