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리어카에 얽힌 사연
기고-리어카에 얽힌 사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1 15: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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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합천 쌍백면
김호연/합천 쌍백면-리어카에 얽힌 사연

1950~60년 시절에는 모던 물건을 남자들은 지게,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운반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리어카라는 장비가 들어오면서 시골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그 당시 도로사정은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는 꼬불꼬불 오솔길이었기 때문에 리어카를 사용하려면 도로를 넓히는 작업이 시급했다. 동네 주민들이 모여 부역(賦役)을 해서 마을 농로(農路)를 만들고, 비록 비포장이지만 리어카가 다닐 수 있도록 도로가 넓어졌다. 그 후부터 농사짓기가 무척 편리하고 일의 능률이 향상되어 농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리어카를 처음 보는 아이들은 신기하여 어른들 몰래 이리저리 끌어보기도 하고 서로를 태우고 끌고 다니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기도 했다. 사람들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했던가? 그 다음부터는 리어카 없이는 일을 못할 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1960~70년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새마을을 만들 때에도 리어카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이들도 조금이라도 도와준다고 리어카에 모래며 시멘트, 자갈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어른들은 읍내에 가서 벽돌을 싣고 와서 삐뚤삐뚤한 마을 담장과 집들을 반듯하게 단장하기 시작했다.

초봄이 되자 아버지는 못자리를 하신다고 짚단과 풀 말린 것과 작두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계셨다. 짐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내가 끌어보겠다고 고집을 피워 간신히 끌기 시작했다. 눈앞에 비탈길이 보이면 리어카 손잡이를 야무지게 잡고 조금씩 뛰어 그 속력으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한다. 그런데 마침 큰 사고가 나고 말았다. 윗마을 귀 바위 정자나무 아래에 개울물이 흐르는 개울가가 있고 정자나무를 돌아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리어카 끌고 휙 돌아서 잽싸게 올라가야 하는데 겨우 십대의 연약한 소녀 힘이 모자랐는지 오르막길을 오르지 못하고 리어카와 가득 실은 짐과 함께 그만 개울물 웅덩이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나는 순간 이제 죽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리어카에 가득 실은 짐과 함께 개울물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물에 빠진 나는 어느 한곳도 다치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 논두렁에서 일하던 옆집 아주머니가 보셨는지 물에 빠진 내가 어떻게 된 줄 알고 한달음에 뛰어 오셨다. 생쥐처럼 한 몰골을 하고 물위로 올라온 나를 보시더니 긴 한숨을 토해 내시며 “아이쿠 야야 조상님이 도우셨나? 어찌 이리 말짱할 수가 있노? 참 별일이다. 그나저나 오늘운수가 참말로 좋은 기라” 하시고는 자신의 일터로 가셨다.

아버지를 도와 드리려는 착한 맘 때문에 하느님과 부처님이 감동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신기하다. 그런데 물에 흠뻑 젖은 짚단이며 풀이 작두에 잘 썰리지 않아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났지만 아무소리도 못하고 작두만 밟았다. 땀에 흠뻑 젖은 내 얼굴을 보시더니 아버지께서는 “봐라, 내가 끌고 간 다해도 고집을 피우더니 물에 젖은 짚단 썰기가 얼마나 힘이드노” 하셨다.

짚과 풀을 썰어 넣고 논에 물을 넣어 못자리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아버지는 소등에 쟁기를 메달아 쟁기질 하시고 나는 논두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하는 작업이라 대충 흙을 논두렁에 올려놓고 아버지의 쟁기질 하시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쟁기를 끄는 소도 힘들겠지만 무거운 쟁기를 잡고 물 논바닥을 갈고 써레질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에도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묘가 자라고 여름이 오면 많은 논을 이런 식으로 쟁기질을 해서 논에 묘를 심어야 하니 농민들의 고생이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지 농촌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고생 하시면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여름 오육월 삼복더위 뙤약볕 아래에서 보리 짐을 리어카에 싣고 끌고 다니면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갈증이 많이 난다. 찬물을 많이 마시게 되면 배탈이 난다고 집에서 만든 막걸리에 물을 희석시켜 사카린을 조금 넣어 마시며 리어카를 끌었는데 신기하게도 목이 타는 갈증은 심하지 않았다. 농사일이라도 지혜가 필요하다. 일을 하면서도 다음 할일을 구상을 하고 내일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 또 필요한 연장이 뭔지 논밭에 가기 전에 완벽하게 챙겨가야 일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해야 바람직하다.

그렇게 힘들게 수확을 해서 객지에 사는 자녀들한테 식량을 보낸다고 정미소에 가서 방아를 찌어 리어카에 담아 10~20리를 끌고 가서 화물로 보내는데 무더운 더위나 추운 겨울에는 고생이 말을 할 수가 없다. 리어카야 말로 교통수단도 되지만 119구급차 역할도 한다. 시골에 응급환자가 생기면 가까운 병원이 없기 때문에 겨울에는 두꺼운 솜이불을 리어카 바닥과 옆으로 깔고 환자를 실어 읍에 있는 병원으로 모시기도 한다. 그 당시에 119구급차라는 것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으니 리어카야 말로 시골 농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교통수단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에는 모든 문화와 환경이 열약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그렇게 중요했던 리어카는 지금 시대 문명의 발전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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