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순연이 언니
아침을 열며-순연이 언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2 14: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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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순연이 언니

순연이 언니가 왔다. 세상에…순연이 언니라니! 내 유년의 산야에 바랭이풀이거나 수양버들이거나 질경이 나물이거나 양철물동이거나, 이 모두를 합쳐서 여태의 내 삶 굽이굽이에서 얼굴을 내미는 그 언니가 오늘 집에 왔다. 함께 소꼴을 베러 다녔고 고구마 이삭을 주우러 다녔지. 저녁 먹기가 무섭게 언니네로 달려가곤 했다. 언니네 안방에서는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며 두런두런. 군불 지펴 따뜻한 작은방에선 우리가 밤새 도란도란.

흑백티비도 없던 시절이니 특히 겨울의 긴긴 밤엔 적당히 밤 마실 갈 곳이 있는 게 여간 당행 한 일이 아니었다. 순연이 언니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의형제를 맺은 인연으로 양 가족은 밤낮 없이 함께 부대꼈다. 두 가족이 읍내 서커스를 보러 간 일은 내 유년의 주요한 추억이다. 당시 열일곱 살이던 순연언니가 시집을 가고 나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도회로 나간 이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를 통해 간간이 소식을 들었을 뿐.

언니가 우리 집에 온 건 생애 처음이고 이렇게 만난 것도 처음이라 할 만하다. 몇 년 전에 진주에 가는 길에 거제도에 사는 언니 댁을 잠시 방문하곤 다시 만난 것이다. 가는 세월을 어떻게 막으랴. 언니는 딱 설명 필요 없이 할머니다. 거제도에 산다는 걸 우연히 만난 지인을 통해 알았고 진주 가는 길에 거제에 갔었던 것인데 오늘은 언니가 김장을 하는 김에 내 것까지 해서 들고 왔다. 올핸 배추도 비싸다는데…깊은 인연이 꿈만 같다.

어린 그 시절에도 언니네에 신세를 많이 졌다. 전쟁을 감당한 당시는 다들 어려운 사정들이었다. 그래도 댓 마지기 논과 밭이 있었던 언니네는 논 한 고랑 밭 한 떼기 없이 날품팔이로 연명하던 우리집보다 조금 사정이 나았다. 그래도 그렇지 날이면 날마다 밤낮없이 와서 숟가락을 올리면 누가 좋겠는가. 그래도 언니네 식구들은 모두 싫은 내색을 할 줄 몰랐다. 아직 그 은혜 갚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또 신세를 지다니, 고마울 뿐이다.

언니는 슬하에 아들과 딸 둘이다. 아들도 성실하고 특히 딸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대기업체에 입사해서 이제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일을 하면서 대학도 진학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더욱이 사내 결혼으로 너무 좋은 남편을 맞아 참 잘 살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는 물론이고 딸과 사위도 효자여서 자식 얘기를 할 때면 언니는 입에 침이 마르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찢어진다.

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었다. 당연히 혼자서 자식을 키우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해냈다. 나는 언니가 너무 장하다. 요즘엔 쓸쓸한 때가 많단다. 자식이 있다곤 해도 각자의 가정의 꾸리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사는 건 녹록지 않다. 쓸쓸함을 이겨보려 술을 자주 마시는 눈치다. 거제로 찾아갔을 때도 기다리다 못해 술을 마셔 이미 얼근하게 취해 있었다. 술이란 한번 침입하면 그 대상을 무너뜨리고 만다는 걸 잘 알기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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