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늙은 아이
도민칼럼-늙은 아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3 18: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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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늙은 아이

요즘, 나는 걸핏하면 운다. 텔레비전에 인생을 얘기하는 다큐멘터리 단막극을 보면서도 눈물을 주르르 흘릴 때가 많다.

우리는 늙으면 아이 된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또 말하기도 한다. 자라면서 이런 말을 어른들에게 들었을 때는 이해 할 수 없었고 맘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환갑이 지나고 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주르르 흐르니 영락없는 늙은 아이가 되고 말았다.

내가 나가고 있는 교회에서 지난 오월에 어린이 주일행사가 있었다. 장로님 한 분이 ‘사랑하는 나의 손주들에게’라는 제목으로 편지글을 읽으면서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늙으면 아이 된다는 옛날 어르신들의 말씀을 실감케 했다.

같은 손자손녀를 보고 같은 세월을 살고 같이 늙어가고 있으매 동병상련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손자손녀들에게 보내는 글을 읽는 내내, 나도 흐르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 낼 수밖에 없었다.

조기유학을 보낸 3남매가 모두 미국에 정착을 하고 그 곳에서 결혼을 했다. 손자손녀들이 다섯이나 재롱을 부리며 자라는 것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1년에 한 두 번은 미국에까지 날아가 손주들을 보고 오곤 한다. 수십 년을 대학에서 후진양성에 청춘을 보내다. 은퇴를 하고나서 두 부부만 덜렁 남게 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월을 묵었음을 실감을 하고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주일학교와 유치부어린이들이 펼치는 재롱율동을 보면서 멀리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손주들이 눈에 밟혀 울컥해지지 않았나 싶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 눈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자식을 낳고 기를 때 보다 손자나 손녀가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이다. 자녀들을 키우고 또 결혼을 시켜 한집에서 평생을 대를 이어 살고 지고 하는 것을 우리 조상대대로 미풍양속으로 여겨 왔지만 세상이 핵가족화로 변화되었다. 일찍이 조기교육 열풍으로 자녀를 외국에 유학 보내는 것이 유행되면서 자녀들이 그 나라에 정착하는 일이 비일 비재하니 부모로서는 자식이, 그리고 손주들이, 눈에 밟히기만 하고 그리울 수밖에…

“사랑하는 나의 손주들아, 하나님은 너희들을 천국의 씨앗으로 이 땅위에 보내셨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게 자라야 한다. 너희들 속에는 이미 천국의 비전이 들어있다”는 대목의 편지글을 읽을 때는 장로직분을 가진 그가 더 목이 멨다. 한참이나 편지글 읽기를 중단했고 곧바로 나의 두 눈에 눈물이 옮겨와 고이게 했다.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읽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에게 나는 아래와 같은 글을 카톡으로 보내 동병상련의 정을 나눴다.

“민들레 홑씨가 바람에 날려 어느 곳에 정착해 아무렇게 살아가는 듯 보일지라도 다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입니다. 자식들과 손주들은 하늘나라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파견되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천국일군이 멀리 떨어진 이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아무 때나 달려가서 품에 안고 눈동자를 맞출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설날을 하루하루 손꼽듯, 귀여운 손자손녀를 볼 날을 손꼽는 것도 소망과 행복이 되고 재미도 쏠쏠 하리라고 봅니다”라고 쓰고 남북이산가족은 서로 지척에서 평생을 그리워하다 애석하게 죽어간다는 사람도 있다고 썼다.

명예, 지식, 재물, 지성과 인품, 모든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고루 갖춘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봤다. 세월이 빠르다며 울고 몸이 노쇠해지고 있다며 울었다. 자녀와 떨어져 살며, 손자가 보고 싶고 그립다며 울었다. 곧 나와 같은 인간의 속내를 드러냈다. 부인과 단 둘이 살며 세월을 뒤돌아보게 되고 육신의 죽음이 가까워오고 있는 것을 애달파 하는 것은 내처럼 영락없는 늙은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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