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갚아야 할 것들흐흐흐, 환갑이다. 정신없이 바삐 살다 또 한 해가 갈 듯 말듯 하는 이때 문득 내가 환갑이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에 음흉하게 웃을 수밖에 별 할 일이 없다. 실은 별 감응도 없기는 하다. 어머니들이 시퍼렇게 살아계신데 내가 버르장머리 없이 환갑잔치를 하겠나 아직 등록금 걱정을 해야 하는 자식들에게 환갑잔치 해달하고 떼를 쓸 건가 말이다. 웃기는 건 친구들이 하나같이 서로 쉬쉬하는 것이다. 다들 속으로 환갑이 뭐꼬, 같잖게!
그래도 환갑이 되니 철이란 것이 아주 조금 들었나 어쨌나. 문득문득 그 사람은 꼭 한번만이라도 찾아뵈야 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혹시 돌아가셨으면 어떡하지. 또 그 분은 진짜 돌아가셨을 것 같네. 중얼중얼 거리며 찾아 만날 사람들을 손꼽아보는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한번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더러 생각난다. 서로에 대해 무지해서 모욕을 주고받은 사람들이다. 치명적인 심술을 당한 일도 기웃기웃 머릿속을 비집고 든다.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은 그때 선뜻 도와준 분들 중 한 분이다. 선배가 챙겨준 카탈로그를 가방에 가득 넣곤 미술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서재로 나를 데리고 가서 “제목하고 가격만 쭉 불러봐라”고 말씀하셨고 나를 시키는 대로 따라 작업을 마쳤다. “그라모 아까 사십 몇 만 원 짜리 그기 젤 비싼기가? 그거 한 질 이리 갖다주라캐라. 글카고 밑에 가서 국수나 한 그릇 묵고 가그라”뵐 때까지 선생님이 돌아가시진 않기를.
아, 윤자! 윤자도 한번 만나봐야겠다. “미영아, 우리 월급도 탔으니까 저어기 튀김집에 가서 튀김이나 좀 묵을래?”, “학교 가야되는데…” 억지로 가자고 해서 튀김을 사주던 윤자다. 토요일엔 일주일 내내 입어 더러워진 작업복을 빨아야하기 때문에 탈의실에서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기고 있는 내게 유나는 살그머니 다가와 자기 작업복 빠는 김에 내 것도 빤다며 획 뺏어가기도 하고. 달려가서 부둥켜안기까지 부자로 잘 살고 있기를.
외할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지고 외할머니는 살아계신다. 어릴 때 내가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외갓집밖에 없었다. 외할머니는 ‘태깽이’(토끼)들이 왔는데 줄 게 없다고 늘 아쉬워 하셨다. 만나 뵙지 못한지 어언 사십 년 불효막심하다. 친정어머니께는 가만가만 말씀드리자. 살면서 은혜를 입었는데 갚지 못한 분들은 없는지. 누구누구라고 말씀하시면 일일이 찾아뵙고 저희 어머니께 잘 해드려서 고맙다고 말씀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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