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갚아야 할 것들
아침을 열며-갚아야 할 것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9 16:4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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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갚아야 할 것들

흐흐흐, 환갑이다. 정신없이 바삐 살다 또 한 해가 갈 듯 말듯 하는 이때 문득 내가 환갑이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에 음흉하게 웃을 수밖에 별 할 일이 없다. 실은 별 감응도 없기는 하다. 어머니들이 시퍼렇게 살아계신데 내가 버르장머리 없이 환갑잔치를 하겠나 아직 등록금 걱정을 해야 하는 자식들에게 환갑잔치 해달하고 떼를 쓸 건가 말이다. 웃기는 건 친구들이 하나같이 서로 쉬쉬하는 것이다. 다들 속으로 환갑이 뭐꼬, 같잖게!

그래도 환갑이 되니 철이란 것이 아주 조금 들었나 어쨌나. 문득문득 그 사람은 꼭 한번만이라도 찾아뵈야 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혹시 돌아가셨으면 어떡하지. 또 그 분은 진짜 돌아가셨을 것 같네. 중얼중얼 거리며 찾아 만날 사람들을 손꼽아보는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한번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더러 생각난다. 서로에 대해 무지해서 모욕을 주고받은 사람들이다. 치명적인 심술을 당한 일도 기웃기웃 머릿속을 비집고 든다.

나는 스물다섯 살에야 대학을 진학했다. 어찌어찌 대학까지 간 것도 혼자 한 맨땅의 헤딩이었는데 대학엘 진학했다고 갑자기 용빼는 재주가 생겨나 등록금이 생길 일은 없었다. 합격증을 들고 낄낄거리는 나에게 선배언니가 월부책 카탈로그 한보따리를 주었다. “찾아가서 도움을 청할 사람 명단을 적어봐. 그리고 차곡차곡 순서를 정해 찾아가!” 선배의 코치는 주효했다. 웬만한 월급쟁이 다섯 달 월급이 될 돈을 단 한 달에 벌었다.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은 그때 선뜻 도와준 분들 중 한 분이다. 선배가 챙겨준 카탈로그를 가방에 가득 넣곤 미술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서재로 나를 데리고 가서 “제목하고 가격만 쭉 불러봐라”고 말씀하셨고 나를 시키는 대로 따라 작업을 마쳤다. “그라모 아까 사십 몇 만 원 짜리 그기 젤 비싼기가? 그거 한 질 이리 갖다주라캐라. 글카고 밑에 가서 국수나 한 그릇 묵고 가그라”뵐 때까지 선생님이 돌아가시진 않기를.

아, 윤자! 윤자도 한번 만나봐야겠다. “미영아, 우리 월급도 탔으니까 저어기 튀김집에 가서 튀김이나 좀 묵을래?”, “학교 가야되는데…” 억지로 가자고 해서 튀김을 사주던 윤자다. 토요일엔 일주일 내내 입어 더러워진 작업복을 빨아야하기 때문에 탈의실에서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기고 있는 내게 유나는 살그머니 다가와 자기 작업복 빠는 김에 내 것도 빤다며 획 뺏어가기도 하고. 달려가서 부둥켜안기까지 부자로 잘 살고 있기를.

외할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지고 외할머니는 살아계신다. 어릴 때 내가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외갓집밖에 없었다. 외할머니는 ‘태깽이’(토끼)들이 왔는데 줄 게 없다고 늘 아쉬워 하셨다. 만나 뵙지 못한지 어언 사십 년 불효막심하다. 친정어머니께는 가만가만 말씀드리자. 살면서 은혜를 입었는데 갚지 못한 분들은 없는지. 누구누구라고 말씀하시면 일일이 찾아뵙고 저희 어머니께 잘 해드려서 고맙다고 말씀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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