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두 여인과의 만남
아침을 열며-두 여인과의 만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0 16:5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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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두 여인과의 만남

막내가 고3이어서 더욱 바쁜 올해를 보내느라 진짜 눈코 뜰 새 없는 중에 천둥처럼 막달인 12월이 닥쳐버렸다. 한번쯤이라도 보고 싶은 몇 사람들이 숙제처럼 밀리고 밀리고 막달을 맞았다. 다행 그 몇 사람 중에 가장 중요하다할 만한 두 사람을 동시에 제법 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두 여인 다 천릿길을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 이웃해 있는 도시에 모임을 갖기 위해 온다는 기쁜 기회를 딱 잡았다.

두 여인 중에 한 분은 고 박종철 열사의 고모인 박정애 시인이고 다른 한 분은 경남 진주의 대표 시인 박구경 시인이니 여러모로 화려한 여인들임에 분명하고 따라서 내게 두 여인은 황송하기 이럴 데 없는 인연이다. 게다가 두 여인이 행사를 조기 마감(?)하고 초저녁부터 우리 셋이만 놀기로 약속이 되었다. 원래 두 분의 행사가 끝날 무렵 슬그머니 가서 얼굴만 뵙고 인사만 드려도 과분했는데 말이다. 아무리 바빠도 그게 무슨 대순가.

토요일, 급한 일들을 그야말로 대충 급히 마무리하고 지하철을 탔다. 고속기차로도 몇 시간을 달려가야 할 걸 지하철로 쌩쌩 간다는 사실이 큰 축복처럼 느껴졌다. 에구머니나, 갑자기 허기가 덮쳐와서 오늘 아침 먹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을 알아차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용케 반 시간 가량 시간이 있었다. 편의점으로 들어가 따뜻한(실제론 미지근한) 유자차로 재빨리 당을 보충했더니 잡아먹을 듯하던 허기가 숙지근해졌다.

옆 좌석에 박정애 시인을 태운 박구경 시인의 애마 흰색 아우디가 곧 나타났다. 서로간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두 여인은 아직 저녁을 못 먹은 나를 걱정해서 식당을 찾았다. 실은 점심도 못 먹었다는 말은 꿀꺽 삼키고 견딜만 하니 숙소를 먼저 잡고 거기서 편안하게 쉬면서 먹자고 제안을 했고 두 분이 받아들였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세 사람 모두 각자 치열한 주말을 보내느라 모두 지쳐있었기에 드디어란 말이 딱 들어맞았다.

숙소는 넓고 따뜻하고 때에 맞게 도착한 음식은 맛나고 푸짐했다. 두 여인의 귀품 있는 우아함은 평생 닮아가도 후회 없을 만했다. 박정애 시인은 사랑하는 조카의 뜻을 평생 시로 승화시키며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싸우는 데 이바지할 것이 자연 확신되었다. 박구경 시인은 특별히 시부모를 포함해 부모님을 대하는 진솔한 효성과 자식교육에 탁월함을 보유했다. 두 분의 본받을 점을 밤새 말할 수도 있지만 지면상 다음으로 미루자.

하룻밤을 함께 묶고 숙소를 나와 점심을 먹고 천릿길 남쪽에 있는 두 여인의 거주지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따라붙었다. 그러면 몇 시간을 더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제 입에서 욕설이 나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식에게도 쌍욕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문학적 재능이 바닥나고 죽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 것을 두 분께 약속드립니더!” 헤어질 무렵 진지하게 결의 드렸다. 그 결의는 기어이 지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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