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와 함께 하는 세상
아침을 열며-시와 함께 하는 세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1 18:2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시와 함께 하는 세상

오늘 아침으로//감잎들 다 쏟아져/그쪽 유리창에 새소리 유난했구나//빗자루 세우고,/말이 더디다던 이웃의 아이에게/이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였네//헌데/감잎 쓸고 나니 마당은/하늘로 다가고 말았네//나는 그제야 말문도 귀도 트여/발등에 이파리들/다 떨어뜨리네 (장석남 시인 ‘감잎을 쓸면서’)

시상적 배경으로 볼 때, 작품 속에서는 가을이 절정에 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풍이 들었더라도 나뭇잎이 매달려있을 적에는 뭔가 풍성한 기분이라도 들었지만, 계절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앙상한 가지만 남았고 날씨마저 싸늘해지자 헐벗은 나무들은 끝없이 추위에 들게 되었으니, 그것이 어디 나무뿐이랴? 이것은 말이 가을이지 사실은 초겨울이라 해도 무관할 듯하다.

새들의 먹이 감은 더욱 줄어들고 그나마 추위를 막아주던 나뭇잎들마저 사라지니 그야말로 춥고 헐벗은 상태이다. 그러니 새들의 울음소리는 맑고 아름답다기보다는 처량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새들의 사정은 모르고 사람들은 새들의 울부짖음 소리를 오히려 맑고 청명하게 들린다면서, 말이 늦은 아이에게 언어치유용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남의 사정은 전혀 몰라주는 이기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늘은 어찌 저렇게나 맑고 푸르고 시린지! 헐벗은 나뭇가지가 하늘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것 같은 것이 오히려 시인의 눈에는 시(詩)라는 언어로 형상화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으니, 아이러니도 보통이 아이러니가 아니다.

세상사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어서, 소 닭 보듯이 서로 아무런 관심도 가질 것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범부들의 생각일 뿐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이 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시리다’, ‘새 울음소리가 청명하다’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그런가보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서로 거미줄처럼 엮인 인과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인은 땅에 떨어진 감나무 잎사귀를 쓸면서 세상의 얽힌 인연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 묘한 인연의 이치를 시라는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장석남 시인의 시는 대부분 사변적 경향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 시 역시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성이 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시는 우연히 쓸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평소 시인 자신이 갈고 닦은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 내공이라는 인연으로 훌륭한 시를 창작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서 잘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