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소설 ‘건축가의 집’
아침을 열며-소설 ‘건축가의 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2.04 16:5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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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소설 ‘건축가의 집’

명색이 작가라면서 몇 년 만에 장편소설 한 권을 완독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대학 입학이 늦어진 이후 자식 키우기까지 도미노처럼 밀려서 실은 본격적인 창작은 아직 5년은 더 지나야 하겠다고 정해놓은 형편이다 보니 독서 역시 덩달아 미뤄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더 지나야하는 5년은 이미 몇 년 전에 구상된 것, 산다는 게 참 우습지 뭐.

사는 게 우습든지 무섭든지 악착같이 열심히 살고 있던 바로 어제, 오수연 작가의 신작 소설 <건축가의 집>이 여러모로 보아 꿈처럼 느닷없이 내게 전해졌다. 여러모로 봐서 꿈같다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반전 운동 모임에서 잠시 함께 한 인연을 기억해서 국내 가장 실력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오수연 작가가 자신의 신작 소설을 보내주었다는 게 꿈 같고. 모든 일정을 제치고 <건축가의 집>을 읽는 주말 내내 나의 과거 한 시대를 헤매느라 꿈같고. 가열한 조국근대화, 국민학교, 고전읽기대회, 등, 내 찬란한 과거!

<건축가의 집> 독서 중에 제일 꿈인 양 즐거웠던 건 단연 문장예술이었다. 능수능란과 자유자재가 혼재하면서 마치 그 둘이 어울려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 듯한 문장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저승에 번쩍 이승에 번쩍. 그것만도 아니었다. 폭포처럼 물난리 나서 홍수지옥에 처박히다가도 갑작스런 감당 안 되는 웃음폭탄을 맞았다. 소설? 바로 이 맛이지.

이렇게 독특하고 유래 없는 문장이 어떻게 가능할까? 진실로 불가사의다. 가벼운가 하면 무겁다. 아니 무겁다기보다 가벼운데 관련된 제반 무거움이 다 포함되는 상태가

<건축가의 집>에서는 장난이다. 아니 장난이 아니다. 뭐야, 장난인가? 우스운가 하면 슬프다. 슬프다보면 또 금세 웃겨준다. 아무튼, 웃기는 소설은 절대 아니고. 장엄하다.

‘군대가 전선을 지키는 동안 나라 안에서는 사태, 사태. 이번까지 벌써 세 번째였다. 나라를 지켜주니까 이것들이. 산속에서 길 잃고 헤매던 3인조 조난자가 옆 초소에서 발견되어 물주니 받아먹고 먹은 만큼 눈물이 질질. 형뻘쯤 되는 초병에게 뭔 말을 하려는 건지 안 하려는 건지 횡설수설하다 가버렸다는 것이다. 가지가지 했다’ 안 웃고 베기냐구.

유려하기도 하고 해학적이기도 한 탁월한 문장이 소설 시작에서 끝까지 쾌속으로 관통한다. 나는 안다. 이러한 경지가 되기까지 물샐틈없는 퇴고의 과정이 있다는 것. 한 문장 한 문장을 갈고 또 다듬고 또, 또! 다시 쓰고 다듬고…실로 장인이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과정이다. 소설가 오수연은 이제 저토록 태양처럼 찬란한 경지에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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