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자베르’경감의 고뇌
아침을 열며-‘자베르’경감의 고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2.19 16: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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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자베르’경감의 고뇌

프랑스 경찰 ‘자베르’ 경감은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설정한 ‘장발장’과 대조되는 인물이다. 주인공인 ‘장발장’이 기댈 곳 없는 가난과 싸늘한 제도와 다른 사람들의 가시 같은 지독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감화된 위대한 성품과 탁월한 능력으로, 다른 이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미워하는 이들을 사랑하며, 따뜻하게 먹여 살리는, 자비와 은혜의 신성의 상징이라면, ‘자베르 경감’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제정한 법과 제도와 정의를 수호하려는 수호신 같은 캐릭터다.

‘미리엘’ 주교에게 감화받은 ‘장발장’은 자기를 ‘무화(無化)’시켜 신의 모습으로 인류애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장발장’의 사랑을 받은 ‘자베르 경감’은 그 사랑의 크기에 고뇌하며 세느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만다.

암흑같은 프랑스 혁명기, 사람들의 마음은 비틀어질 대로 비뚤어져, 특정한 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와 분노의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가난과 헐벗음으로 빵 한 조각에도 사랑과 자비가 깃들 틈새가 없어 늘 아귀다툼으로 넘실거리고, 이미 마련된 국가의 제도는 추호의 인정도 없이 싸늘하게 인간의 성품과 존재를 박탈하여 가두어 버린다.

그렇더라도 ‘자베르 경감’은 이런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여 나라를 올바르게 세우는 것은 법과 제도라고 확신하며, 그런 법과 제도의 수호자로서, 또 정의의 사도로서 끝까지 ‘장발장’을 추격한다. 그렇지만 마침내 애절하게도 경찰로서의 그의 훌륭한 마음가짐과 본받을 만한 업무수행을 뒤로한 채 ‘자베르 경감’은 그의 삶을 비극적으로 끝낸다.

아마도 위고는 춘추 전국시대의 ‘공자’의 사상과 삶의 자세를, 식민지 장악, 제국주의 확장 전쟁, 정권내부의 헤게모니 장악이 최우선인 로마제국주의 시대의 정치적 아비규환과 칼바람 속에서 하늘의 나라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외치다 십자가에 못박힐 수 밖에 없었던 ‘예수’의 위대한 궤적을 생각하며, 가난과 헐벗음과 증오의 복수가 난무하는 그 혁명의 극단에서 ‘자베르 경감’의 ‘법 수호’보다 ‘장발장’의 ‘사랑’을 더 그리워하며 이를 그려내려 하였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장발장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기 내면에 확고하게 정립되어있던 사람과 사회정의에 대한 혼란을 빅토르 위고는 극명하게 대비하여 묘사하려 한 것 간다.

‘자베르’ 경감의 이런 혼란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못 견뎌하는 것은 견고하게 굳어져 있는 자기의 고정관념(즉 편견, 선입관)이 일상생활에서 깨지는 것을 자꾸자꾸 경험할 때다. 예컨대 ‘저놈’은 분명히 나쁜 놈인데. 아주 악랄한 놈인데, 만나는 사람마다 ‘저 분’은 아주 좋은 사람이고 함께 할 사람이며, 또 ‘그 사람’이 하는 짓마다 올바르고, 하는 일마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 되는 것을 자꾸자꾸 스스로 확인할 때다. 이것이 바로 장발장의 일상을 추격하는 자베르 경감의 고뇌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자기 합리화로써 확언한다. ‘아니야 아니야 저것은 위선이야. 속이는 것이야’라고 고집하며 강변한다. 특히 이런 행태들을 특히 확신에 찬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견한다. 그리고 확증편집을 해댄다. 질 나쁜 기자들, 공직자들, 악랄한 통치자들의 경우다.

물론 어떤 확고한 신념과 확신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동료를 모아 세력을 형성하며, 개인으로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도 빛나고 거룩하게 이루어내는 마력(魔力)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독재자들의 그러한 신념과 확신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가.

하여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사람을 바꾸고 법과 제도를 바꾸는 시도들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진정한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나’를 ‘그 사람’을 바뀌게 하는 것이고, ‘나와 너’가 살아가는 삶의 문화를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이다. ‘내’가 바뀌지 않고 ‘우리 문화’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공직자를 몇백만 번 바꾸고 법과 제도의 틀을 천만번 바꾸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과 문화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러니 그럴듯한 명분을 들이대며 상대방에게 손가락 삿대질만 해대며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태를 진지하고 간절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 내가 미워하는 대상, 내가 좋아하고 확신하는 것들에 대하여 스스로 냉정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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