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국혼의 상징, 단재 신채호
아침을 열며-국혼의 상징, 단재 신채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2.20 16: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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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국혼의 상징, 단재 신채호

2월 8일부터 3월 1일까지는 나는 늘 책상 위에 촛불을 세 개씩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재일 한국청년들의 2·8 독립선언서가 일본 중심부에서 울려 퍼진 후 3·1절까지 이어져 빼앗긴 국권 회복을 위해 분투하신 이 나라 이 민족의 뜨거운 혼을 기리기 위해서다. 2월 21일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순국일이다. 조선독립운동가 중에서 고집스러운 분들이 하나둘이었겠느냐마는 유독 단재는 그중에서도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셨다.

제자가 아침에 세숫물을 준비하여 두면 고개를 숙이지 않고 머리를 꽃꽂이 들고 세수를 하자 윗도리에 물이 흥건히 젓는 것을 보고 스승님 세수를 그리 하시면 옷이 다 젖는다고 하자 단재는 어허 이놈아 내가 고개를 숙이면 조선 총독에게 고개를 숙이는 꼴인데 어찌 그런 치욕을 감당하겠느냐고 호통을 치셨고, 영어를 가르치고 발음할 때도 마냥 우리식으로 구사를 하여 누군가 틀렸다고 말하면 조선사람이 조선식으로 말하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되려 꾸짖어 셨다. 단재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고령, 구한말부터 언론 계몽운동을 하다 망명,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나 백범 김구와 공산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임정을 탈퇴, 국민대표자회의 소집과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사서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단재가 강조한 종교관과 역사관은 다음에 나타나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 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현재 이 땅에서 창궐하고 있는 지나친 기복신앙에 일침을 가하고 역사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훈계하고 있는 이 말씀은 줏대 있는 종교관과 역사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고 계신다. 전국의 향교와 교회, 절에서는 단재 선생님의 혼을 모셔 진실로 국가를 반듯하게 하려고 무엇을 다시 채근해야 하는지를 여쭈어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신 단재는 독사신론에서 다음과 같은 혼서를 이어갔다.

내가 지금의 각 학교에서 교과서를 쓰는 역사를 보건대, 가치 있는 역사가 거의 없도다. 제1장을 펼치면 우리 민족이 지나족의 일부분인 듯하며 제2장을 펼치면 우리 민족이 선비국의 인부인 듯하며, 나중에 전편을 다 펼치다 보면, 때로는 말갈족의 일부인 듯하다가 때로는 몽골족의 인부인 듯하며, 때로는 여진족의 일부인 듯하다가 때로는 일본족의 일부인 듯하니, 아아, 과연 이럴진대 우리 몇 만 방리의 토지는 이것이 남만 복적의 수라장이며, 우리 4000여 년의 산업은 이것이 아침에는 양나라, 저녁에는 초나라의 경매물이라 할지니,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럴 이치가 있으리오? 역사의 붓을 잡은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이 되는 한 종족을 먼저 나타내어서 그것을 주제로 지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잘 되고 못 되었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성하고 쇠하였으며, 그 무공은 어떻게 진퇴하였으며, 그 습속은 어떻게 하였으며, 외래의 각 종족을 어떻게 흡수하였으며, 다른 곳의 여러 나라를 어떻게 교제하였음을 서술하여야 여기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신이 없는 역사이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없는 민족을 낳으며, 정신없는 국가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오.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귀에, 항상 애국이란 말이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눈에, 나라라는 글자가 배회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봉사케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발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달리게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목이 항상 나라를 찬사하게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머리들이 항상 나라를 위해 뭉치게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혈혈누누가 나라를 위해 솟구치게 할 것인가? 말하노니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줏대 있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인 역사를 강조하셨던 단재의 역사관은 오늘날 우리 역사가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것이다.

영어 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기회주의자의 양산과 경로사상의 쇠락은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기강을 무너뜨리는 일이나 바른 역사교육은 그런 문제를 일소시킬 것이다. 우리 국학 인들은 약 30년 이상 바른 역사 알리기에 힘을 쏟았고 앞으로 더욱 매진해 갈 것이다. 단재는 1936년 2월 21일 만주국 뤼순 감옥에서 뇌졸중과 동상, 영양실조 및 고문 후유증 등의 합병증으로 인해 차가운 독방에서 57세의 일기로 순국하였다. 2월 21일 그분을 기리며 향을 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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