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한국의 박사(博士)와 칭호
진주성-한국의 박사(博士)와 칭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12 15:4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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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한국의 박사(博士)와 칭호

학술의 연구에 우수한 업적을 올린 사람에게 주는 학위로 대학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박사논문의 심사 및 시험에 합격하여 학력의 확인을 얻은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교수의 임무를 맡아보던 벼슬. 백제 때에는 시 서 역 예기 춘추의 오경에 박사를 두고 고려 때에는 태학. 신라 때에는 국학에 고려 때에는 국자감에 조선조 때에는 성균관 홍문관 규장각 승문원에 각각 박사를 근무토록 하여 두었다.

삼국시대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 교수의 명칭은 고구려에서는 교육기관에 태학(太學)박사 백제에서는 시 주역 예기 춘추의 5경박사를 신라에서는 산학(算學)박사까지 두었으며 고려에서는 국자감이란 중앙교육 기관에 국자박사 사문(四門)박사 서학박사 산(算)박사를 두어 교수케하였다. 조선조 때에는 성균관 홍문관 규장각 승문원에 박사를 두어 문학 또는 교수 등 맡게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박사는 전문기술자라는 뜻도 있어서 백제에서 일본으로 보낸 기술자 중에서 탑(塔)박사 노반(露盤)박사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현대에 와서는 학술연구가 많은 사람에게 또는 특수대학에서 수여하는 학위가 많은 종류로 분류되어 각자 전문부문의 박사학위가 수여되며 또한 명예박사는 학술과 문화발전 인류문화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자에게 대학원장의 추천으로 대학원의 위원회에 의결을 거쳐 문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대학총장 또는 대학학장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위의 종류는 수백 종이나 되며 그 중 의학박사 학위 수여자가 제일 많으며 1980년대 초까지 한국박사 총람에 5000명(1979)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는 서재필(의학)로 대구출신이며 갑신정변때 김옥균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 미국으로 건너가 귀국 개화사상 고취 독립신문 발간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운동 전개 1948년 미국으로 가서 여생을 마쳤다.(1863-1951) 다음은 1908년 이승만 박사(철학)프린스턴 대학을 수료하였고 1909년에는 오극선 박사(의학), 1918년 김규식 박사(법학), 1924년 조병옥 박사(철학), 1924년 오한영 박사(의학, 1925년 장면박사(법학), 1926년 이원철 박사(의학), 1927년 백낙준 박사(철학), 1928년 조응천 박사(이학) 등 1945년 해방 전까지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박사는 의학 31명, 인문사회 11명, 자연과학 7명의 박사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후부터 현금까지 우후죽순처럼 밀려온 박사학위 특히 의학계통은 의사라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소지자들에 의해 의학이 많이 발전했다. 학술의 연구에 우수한 업적을 올린 사람을 박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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