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내 친구가 사는 법
아침을 열며-내 친구가 사는 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17 15: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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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내 친구가 사는 법

작은 카페를 하고 있는 내 친구 숙이를 만나고 왔다. 비교적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도 지난 설에 얼굴도 못 본 게 안타까워 내가 카페로 들이닥치기로 했다. 딸이 하던 카페를 딸이 공부를 계속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친구가 운영을 배워 팔자에 없는 바리스타가 됐다며 활짝 웃었다. 워낙에 낙천적인 친구는 평소보다 더 밝은 표정이었다. “코로나 땜에 온 세상이 난린데 뭐가 그리 밝노?” 내가 불만하자 친구는 소리까지 맑게 더 큰 소리로 웃었다.

다른 테이블에 차를 다 내주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 몫으로 들고 비로소 친구는 내 앞에 마주 앉았다. “코로난가 무시긴가가 아직은 우리 카페에는 못 왔다. 올 때 오더라도 더 씩씩하게 손님들 맞아들일란다. 때 없이 물구나무를 서도 여기 들어온 사람은 한 번씩 웃고 돌아가도록 해볼라꼬” 통통한 체격의 친구가 물구나무를 서는 상상만으로 나는 입 안의 커피를 뿜을 뻔했다. 겨우 커피를 삼키고 다른 손님에게 방해될까봐 소리죽여 키득키득 웃었다.

“소리 죽일 거 없다. 웃음은 전염된다 카더라. 마음놓고 큰소리로 쎄리 웃어라. 웃음소리가 싫어모 나가라카지 머”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 테이블 손님 두 사람이 왁자하게 웃었다. “쫓겨나기 싫어서요”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웃음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서 슬며시 기어 나왔다. 유일하게 웃음만이 가짜도 진짜와 거의 같은 수준의 효과를 낸다는 정보였는데 소리 내어 웃는 시늉만 해도 암세포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거였다. 웃음, 가짜가 판쳐도 돼!

잠깐만 하는 표정을 내게 내밀곤 친구가 슬그미 일어났다. 친구는 옆 테이블로 가더니 쪼그려 앉아 손님 다리를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발을 잡힌 손님은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다, 니팔 아프다. 친구도 왔는데 마 오늘은 쉬자!” 친구가 그의 다리를 본격적으로 마사지하며 대꾸를 드렸다. “친구가 왔다꼬 할 일을 쉬믄 더 안 되지예. 노는 손에 가는 시간에 가만히 있으모 뭐 합니꺼?” 친구는 처음이 아닌 듯 능수능란하게 손님 양쪽 다리를 마사지했다.

마사지를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온 친구에게 손님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눈은 내게로 향했다. 내가 그 눈길을 마주하자 손님은 친구 칭찬을 쏟아냈다. 인사를 잘하기로 온 동네 소문이 자자하다느니, 부지런해서 산꼭대기에 갖다놔도 살 것이라는 둥. 쑥스러운 표정으로 엉덩이를 들썩이던 친구가 서둘러 출입구 쪽으로 내달아 밖을 향해 소리쳤다. “언니, 이리로 들어오셔요, 생강차 한잔 하셔요. 제가 살게요” 손사래 치며 도망가려던 언니는 친구에게 잡혔다.

“하이고오, 이 마담 땜시 몬 살것어. 맨날 일키 공짜 차만 팔아서 어떻게 언제 돈을 벌어” 지금은 사라진 다방 마담이라는 말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또 한바탕 웃었다. 붙들려온 언니는 연세가 팔순 넘긴지 한참 됐을 성싶었다. 알고 봤더니 친구는 연세 많은 어르신들께 할머니란 말 대신 모두 언니다. “돈?, 언니, 걱정도 참, 까짓것 쌀 20키로믄 한 달 살잖우?” 흐뭇하게 웃던 언니가 가만가만 한 말씀 하셨다. “그려. 어려운들 보릿고개만 할까, 웃으며 이 고비 넘기세! 좋은날 오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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