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건국의 역사가 숨쉬는 이화장
진주성-건국의 역사가 숨쉬는 이화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09 15:4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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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건국의 역사가 숨쉬는 이화장

이화장(梨花莊)은 조선 중종때의 학자인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이 건립했다. 인조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살기도 했던 이 집이 이승만 박사의 사택이 된 건 1947년 해방이되자 귀국한 이박사가 대한민국을 건국하려 할 때 집 한 채도 없었던 까닭에 기업가 33인이 돈을 모아 구입해 준 것이다.

지금도 이박사의 손자가 살고 있으며 조각당 등 부속건물도 볼거리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자 귀국하여 1948년 8월 15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대통령이 되어 철저한 반공주의로 일관했고 일본에 대해서도 강경한 정책을 폈다.

그러나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감행 4선이 되었지만 4·19혁명으로 사임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1965년 하와이에서 사망한 후 국립묘지에 안장 되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검소했던 대통령은 고(故) 이승만 박사이다. 이승만 박사의 사택이었던 이화장에 가면 그가 얼마나 검소했나를 알 수 있다. 필통에 꽉 찬 몽당연필, 바느질로 기운 옷들, 잡지를 이용한 스크랩북…심지어 안경집도 바느질 자국이 가득하고 모자도 여러번 수선한 흔적이 보인다.

이화장은 또한 우리나라 건국의 역사를 가득 담고 있다. 1919년 6월 세계 각국에 우리의 독립을 정식으로 통보한 외교문서 김규식에게 내린 지령문 해방직후 이박사의 활동을 적은 사진들 영빈 접대에 사용하던 응접실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965년 이승만 박사가 운명한 후 이화장은 미망인 프란체스카 여사(1992년 작고)의 살림집으로 쓰였는데 부인 역시 검소하기가 남편 못지않았다. 부엌의 낡은 찬장과 놋그릇들 부인이 일일이 기웠던 자녀들의 내복 종이박스로된 옷장 등등 어느것 하나 새것이 아니다. 일국의 대통령 유품이라기엔 너무나도 검소한 생활용품들이 관람객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약 2만여 점의 유물이 있으며 대지가 1700여평이나 되어 산책로와 벤치도 군데군데 설치되어있다.

이화장이 있는 대학로엔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마로니에 공원, 연강홀 극장 등 문화명소도 주변에 즐비하다. 각료를 선정하던 곳이라하여 조각당(組閣堂)이라는 이름이 붙은 부속건물 옥중에서 집필했던 영한사전 원고, 이승만 박사의 사설이 게재된 제국신문, 프란체스카 여사가 결혼 당시 소지했던 여권 등 이화장은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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