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아, 베토벤!
아침을 열며-아, 베토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21 16:0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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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아, 베토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말했다. “우리 시대에는 이런 비겁하고 음험한 가엾은 혼을 가진 인간들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힘찬 정신이 필요하다” 지금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좀 전에는 6번 <전원>을 들었다. 두 곡 모두 그 유명한 카라얀이 지휘한 작품이다. 군무나 합창 같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이뤄내는 예술 작품을 보거나 들으면 혼자서 이뤄내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분명 있다. 우선 장엄미와 웅장성이 확연히 다르다.

<전원>은 언제 들어도 마치 홀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봄 동산을 거닐 때의 감동이 온몸으로 시냇물처럼 흐른다. 가을에 떨어져 겨우내 얼어있던 가랑잎들 아래로 돌돌돌, 도랑물이 흐르고 연둣빛 이파리들이 반짝이는 봄 언덕의 찬란한 감동은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데 베토벤은 그 전원의 찬란함을 한 점도 빠뜨리지 않고 알뜰살뜰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봄 동산뿐이랴, 무성한 여름, 장엄하면서도 두려운 겨울, 숙연한 가을 전원을 음악으로 살려낸다.

<전원>과 <합창>을 들었는데 <운명>을 듣지 않으면 어쩐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운명>까지 들었다. 그 유명한 도입 부분의 ‘짜자자쟈안~’을 듣는 순간 운명이라는 말의 두려움과 경이감이 함께 그야말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운명>이 이어지는 내내 ‘짜자자쟈안’이 여러 가지 리듬으로 변주 되다가 음악은 서서히 깊고도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하는 듯한 감동을 준다. 아마도 불가항력의 운명에 저항하다가 백기를 들고 받아들이는 순간일 듯.

<합창>은 세곡 중에서 가장 씩씩하다고나 할까, 소란스럽다고나 할까. 음이 보다 다양한 건 확실한 것 같다. 경쾌하기도 하고. 느닷없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떠올라 내내 사라지지 않기도 했다. 마음은 대령의 가족이 끝내 탈출에 성공하는 순간의 그 푸르른 산등성이를 도레미송을 부르며 마구마구 날아다녔다. 베토벤은 아마도 자연을 무척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불타는 가을산인가 하면 폭풍이 몰아치는 절벽이고 바닷물이 벌떡 일어나 밀려든다.

“우리시대에는 이런 비겁하고 음험한 가엾은 혼을 가진 인간들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진정 베토벤이 한 말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저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창출한 사람이 아닌가. 한편으론 아니 무수한 시기와 질투를 받아본 베토벤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저 말은 타인의 시기질투를 받곤 석 달 열흘 동안 짜증을 내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얼마나 화가 났을까. 얼마나 화가 났으면 ‘격렬하게 비판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을까.

남이 잘하는 일을 인정하지 못하고 되려 시기질투로 비난하면 비겁하다. 사회적 지도자가 되겠다면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이리저리 피해가면 음험하고 가엾다. 사사건건 부정적인 말만 들으면 우리는 불쾌하다. 시기질투로 올바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결여되어 가면 그 사람의 인생은 조만간 황폐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긍정적으로 희망을 모색하고 찾아내는 사람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선거철이다. 올바름을 알아보는 힘찬 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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