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하동 작가 하아무
아침을 열며-하동 작가 하아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05 15:4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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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하동 작가 하아무

소설가 하아무는 성격이 참 순하고 고운 작가다. 그리고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쉬지 않고 부단히 쓴다. 순하고 고운 성격은 세상의 슬픔과 불행에 눈감지 못한다. 그것들은 애써 보고자 하지 않아도 하아무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작가가 되기 전부터 그랬다. 세상의 비참과 고통이 그의 가슴속을 찌르면 그는 함께 고통스러워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돕고 싶었다. 정히 도울 힘이 없다면 세상에 알리기라도 해야 했고 작가가 됐을 것이다.

작가 하아무는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라고 했다. 그의 어떤 모습이 그런 정의를 하도록 했는지 그 언행을 말하는 것만으로 슬며시 웃음이 입술을 간지럽힌다. 애초 그는 언제 어디서나 말은 별로 없고 존재감은 묵직하다. 그는 곧잘 소리 내어 웃기도 하지만 거의 언제나 입술을 초승달처럼 해서 웃는 모습으로 함께 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곤 하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고 실은 그의 존재감은 그의 순하고 고운 마음에서 유포되는 것이니 묵직할 수밖에 없다.

하아무 작가가 신간 소설집을 냈다. <푸른 눈썹>이 그것이다. 표제작인 ‘푸른 눈썹’은 녹차를 채집하고 덖고 비비고 재우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잔디를 깎을 때 나는 풀향기 같은 쌉싸릅한 녹차향이 은은하게 피어나는 그 과정을 읽다보면 맑고 푸른 녹차가 마시고 싶어 목이 말랐다. 참새 혀 만한 얘기 녹차 잎을 따고도 싶고 그걸 뜨거운 가마솥에 넣고 덖어도 보고 싶고, 또 덖은 걸 흰 무명천에 싸서 비비고도 싶었다. ‘첫물차의 색과 향을 음미’하고 싶었다.

표제작이라 그랬을까. 풋풋한 차향 때문일까. 유난히 ‘푸른 눈썹’이 마음에 맴돈다. 하아무 소설은 작품마다 아픈 불행이 형사화 되었듯이 이 작품 역시 아픈 불행이 똬리 져 있다. 어른들의 부주의로 어린이집 노란 차안에서 질식한 아이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300도가 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또르르 말리는 찻잎과 60~70도의 버스 속에서 숨을 헐떡거리는 작은 아이가 겹치는 영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영상을 안은 아이 엄마의 고통에 가슴이 저민다.

‘비정하고 야만스럽기 이를 데 없는 그를 두 번, 세 번 죽이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죽어준다’ 아홉 작품중 두 번째로 수록된 ‘날마다 죽는 사내’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이 마음에 들어오는 때엔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란 이렇게 날마다 매순간 죽어주며 살아가는 것 아닌가. 죽어주지 않고 내 살고 싶은 대로 살려고 하면 감당하기 버거운 도전이 딱 버티고 있는게 우리들의 삶 아니던가 말이다. 언제쯤 진정 사는가시피 살아가게 될까.

보기에도 사귀기에도 좋은 하아무 작가에게 욕심을 부려본다. 문장이다. 소설은 문장 예술임을 깊이 자각하기를 바란다. 단편 한 작품 안에서 진부한 낱말이 하나만 들어가도 그 단편 전체가 자칫 진부해진다. 진부함은 모든 예술의 암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참신함을 찾아 구만리를 헤매는지 모를 일이다. 낱말과 문장 하나하나에 긴장해야하고 그것은 작품을 마지막 퇴고하는 순간까지 벼리고 벼려서 검객의 칼날처럼 언제나 산득산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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