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느리게 사는 지족의 삶
칼럼-느리게 사는 지족의 삶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5 15:0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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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느리게 사는 지족의 삶

어느 날 영국의 아프리카 탐험대가 원주민들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정글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걷다 보니 웬일인지 원주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들이 더 이상 걷지 못 할 만큼 많은 거리를 걸어온 것도 아니었다. 탐험대장은 그들이 그냥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원주민들의 우두머리를 달래보기도 하고 호통을 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우두머리와 함께 그 자리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탐험대장이 통사정하듯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왜 걷지 않겠다는 것이오? 제발 마음을 돌리시오” 우두머리가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걸어왔다오”, “그게 이렇게 주저앉을 만큼 힘들었다는 것이오?”우두머리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탐험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너무 빨리 걸어왔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뒤에 쳐져 있다오. 그래서 마음이 뒤따라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오” 뜻밖의 말에 충격을 받은 탐험대장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서양의 기계 문명을 비판하기 위해 지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로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는 이야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가난의 서러움에 너무나도 오랫동안 시달려온 우리는 모두가 잘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써왔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앞만 보며 달려오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물질만능과 금전만능의 풍조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살이는 점점 황폐해지기만 했다. 마음이란 거울과 같아서 처음에는 갓난아이의 마음처럼 맑고 깨끗하다. 그런 것을 쓰지 않고 버려두어서 어느 사이엔가 먼지가 묻고 때가 낀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이와 같이 깨끗할 때부터 게으름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닦아주며 정성껏 손질해야한다. 우리는 ‘잘 살아보자’는 구호를 내걸고 앞만 보며 달려와 고도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부럽지 않게 ‘잘 산다’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최고의 길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우리는 값진 외제차를 타고 평수가 넓은 아파트에서 살기만 하면 잘 살게 되는 것으로 여기면서 늘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반드시 잘사는 것은 아니며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쳐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돈은 분명 풍요로움을 해결해 주는 방편이다. 그러나 각자의 행복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바다에서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퍼마시면 더욱 더 목이 타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들은 바로 그런 형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국 사찰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고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집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봉축행사도 한 달 미루었다. 2600여 년 전에 인도 카필아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난 아기 부처님께서 일곱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에 붉은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 연등에 불을 켜고 어둠을 밝히는 것은 내 마음속 어리석음과 욕심인 무명(無明)을 밝히는 일이라고 했다. 연꽃의 성품을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고 한다. 즉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연꽃이다. 요염과 교태를 모르고 줄기의 한가운데가 텅 비어 공적(空寂)하지만 곧게 뻗으며, 덩굴과 가지 없이 자라남도 연꽃의 됨됨이이다. 은은한 향기가 멀리 나아가니 가히 연꽃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현우경>에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난다’라는 여인은 몹시 가난했지만 시장과 골목을 돌며 구걸해 겨우 한 푼 돈을 얻는다. 그 돈으로 등과 기름을 사서 붓다에게 등불 공양을 올린다. 그 등은 매서운 비바람에도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다. 진정한 공양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러운 마음에 있다는 가르침을 말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즉 연등을 공양하는 까닭은 세상을 밝히듯 자신의 마음 또한 밝힌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흔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바세계(裟婆世界)라고 한다. 사바세계는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연등을 밝히는 이유도 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에서 삶에 안락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등의 빛은 자애와 자비의 빛이다. 바깥 활동을 마음대로 못 하는 고난의 시간들이지만 이를 오히려 느리게 사는 지족의 삶의 철학이 깃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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