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영감을 주는 사람
아침을 열며-영감을 주는 사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06 15: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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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영감을 주는 사람

‘캠벨 에이시아’라는 아리따운 소녀가 있다. ‘모든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손녀’라 불리는 13살 소녀다. 이 세상의 역사에서 무수한 전쟁이 일어났고 무수한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어 죽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산화한 전쟁영웅들을 각 나라는 저마다의 국립묘지에 모셔서 충정으로 기리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전쟁을 위하여 전 세계에서 기꺼이 달려와 산화한 이들을 모신 유엔 공원묘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부산 남구 대연동의 유엔공원 묘지가 그것이다. 유엔공원 묘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영혼들을 모시고 있다.

‘캠벨 에이시아’는 이 유엔 기념공원 근처에 산다.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부산에서 자라 당연히 유창한 부산말을 쓴다. 그녀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에게 붙은 별칭을 보면 그녀가 어떤 생각 어떤 일을 하여서 유명하게 되었는지 금방 알게 된다. ‘꼬마 민간외교관’, ‘6·25 전쟁사 박사’, ‘참전용사들의 손녀’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에이시아 자신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참전용사들의 손녀’다. 에이시아가 유명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16년 H20 품앗이 운동본부에서 실시한 ‘UN 참전용사에게 감사 편지쓰기 공모전’에서 1등을 하여 6·25 전쟁에 참전했던 네덜란드 반호이츠 부대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이곳에서 참전용사를 만난 에이시아는 “낯선 나라 국민을 위해 희생을 하고 평생 아픔을 겪었는데도 오히려 찾아와 준 저를 향해 고맙다고 말하는 분들께 놀랐다”면서 “그분들이 살아계실 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공감’능력이 매우 뛰어난 에이시아는 이후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진정성’으로 4년 내내 6·25전쟁 기념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 특유의 애교와 붙임성으로 해외 참전용사들과 가족처럼 친해졌다.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서도 노래 공연, 사회, 프레젠테이션, 현장 인터뷰 등을 직접 진행하여 존재감을 드러냈다.

올해 어떤 TV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에이시아는 이렇게 답했다. “장래의 희망은 어제나 변하겠지요, 하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6·25전쟁 이후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어 왔고 또 지금도 쉼 없이 이루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과제해결과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매우 근본적이고 소중한 명제를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19세기 국제정세에 대한 오판(誤判)과 어리석은 대응으로 일제 36년간의 치욕을 당하였고, 이어 발발한 6·25전쟁의 참화와 가난의 연속,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으로부터 가난한 나라라고 노골적으로 무시를 당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고자 우리는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깨닫고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으로 저마다 잘 살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를 썼다. 결과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경제 수준이 비슷하게 되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대략 1974년 4월 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는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문재인 대통령 6·25 70주년 추념사 중)” 우리나라를 가난하다고 의도적으로 멸시하였던 필리핀의 실정은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다.

하지만 이 인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돈이 모든 것을 말해버리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그리하여 아울러 뭔가 2% 부족한 것 같고, 뭔가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전함이 드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꼭 이처럼 모든 것을 힘과 돈으로만 재단하는 숫자 노름 만이 능사(能事)는 아닐 터인즉 뭔가 한쪽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강한 국방력과 경제력을 키워 나오면서 정작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비록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온 동네에 넘실거렸던 다정하고 풍성한 인정이 있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늘 뿌듯하게 긍지로 삼아왔던 마음과 정신 그리고 공감 능력은 풍성하였다. 이런 우리의 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랬는데 불현듯 ‘캠벨 에이시아’가 ‘영감’이라는 말로써 이를 일깨워 주고 있다.
하여 우리는 이제 다시금 우리를 발견하여 새로운 시대의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한다. 우리의 본바탕인 ‘영감’을 되살려 그 옛날 하늘빛처럼 푸르고 청아한 정신과 굳센 마음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다 함께 공감하는 해맑고 복된 영혼을 되살려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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