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시무상소(時務上訴)
장영주 칼럼-시무상소(時務上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01 15:5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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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시무상소(時務上訴)

시무란 때맞추어 국사를 바로잡는 일이며 상소란 대신들이나 지도층이 왕에게 올리는 정책대안이자 솔루션이다. 고려와 근세조선의 왕권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 중에 하나이며 왕의 중요 업무 중 일부는 상소를 읽는 일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 이후 갑자사화를 일으켜 “아니 되옵니다”라며 집단상소를 올리는 신하들을 무참하게 제거하다가 폐위 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반면 세종께서는 시책에 번번이 반대한 허조와 자신의 즉위를 크게 반대하였던 황희를 늘 가까이 두고 중용했다.

시무 상소문이 역사에 기록되기는 통일신라의 ‘최치원’(857~?)으로 올라간다. 그는 당대의 천재로 당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승무랑 전중시어사의 벼슬을 지내다가 귀국 후, 진성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린다. 세세한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망국적인 골품제를 폐할 것을 위시로 주창한 것으로 짐작 된다. 이미 세계적인 석학인 그는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체득하였지만 중국의 일방적인 대국관에 맞서 우리 민족의 역량이 그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표명하고 유, 불, 선은 하나라는 ‘삼교회통’의 경지를 추구했다. 쓰러져가는 국운을 재건하기 위한 자신의 상소가 받아들여 지지 않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고려 6대 성종의 명에 따른 ‘최승로’ (927~989)의 ‘시무 28조’가 있다. 그중에 22조가 전해지는데 국방, 외교, 내치, 종교, 정치, 경제에 두루 이르고 있다. 최승로는 최치원의 후손이라고 알려진다.

가장 강력한 상소는 지부상소(持斧上疏)로 일명 도끼상소가 있다. 충선왕이 숙창원비(부왕의 후궁)를 범하자 대신 ‘우탁’(1262~1342)이 흰 옷을 입고 도끼를 가지고 짚방석을 메고 대궐에 이르러 크게 상소를 간하니 좌우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왕이 부끄러운 기색을 지었다. ‘율곡 이이’(1537~1584)는 ‘시무육조’를 통해 십만양병설을 외치며 예비를 역설하였다. 첫째,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충족시킬 것. 둘째, 군민을 보양할 것. 셋째, 재용을 충족히 할 것. 넷째, 변방의 방비를 튼튼히 할 것. 다섯 째, 전마를 준비해 둘 것. 여섯 째, 교화를 밝게 할 것. 그러나 조정과 선조는 이 냉철하고도 뜨거운 상소는 뒷전으로 밀쳐내고 당파 싸움으로 날을 지 세우다가 10년 뒤 임진왜란은 맞는다.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백성은 피바다 속에서 도륙된다.

1876년 일제의 강압으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이 도끼를 메고 광화문 앞에 엎드려 개항과 조선, 일본 간의 국교체결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 옛날 시무상소는 국록은 먹는 고위직이거나 경륜 깊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이제는 어찌 된 일인지 티끌 같고 먼지 같은 백성이 나라님과 대신들 안위를 걱정하여 상소를 올리고 구름 같은 백성들이 옳다고 한다. ‘조국백서’가 나오더니 꿰맨 듯이 뒤따른 ‘조국흑서’로 국론은 극명하게 나뉘고 무엇보다 지엄하신 나라님과 그 나라님의 마음에 빚이 된 대신은 기생충과 병원균보다도 뭇 하다는 평을 받는다.

스스로 먼지와 같다는 사람이 올린 2020 시무상소는 이렇게 시작 된다.

“타국의 역병이 이 땅에 창궐하였는바, 가솔들의 삶은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그 이전과 이후를 언감생심 기억 할 수 없고 감히 두려워 기약 할 수도 없사온데 그것은 응당 소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백성들은 각기 분하여 입마개로 숨을 틀어막았고 병마가 점령한 저자거리는 숨을 급히 죽였으며 도성 내 의원과 관원들은 숨을 바삐 쉬었지만 지병이 있는 자, 노약한 자는 숨을 거두었사옵니다”

본론인 시무상소는 7조로 하나같이 적확하고도 힘찬 지적이다.

첫 번째, 세금을 감하시옵소서. ​두 번째,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시어 정책을 펼치시옵소서. 세 번째,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외교에 임하시옵소서. 네 번째,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옵소서. 다섯 번째, 신하를 가려 쓰시옵소서. 여섯 번째, 헌법의 가치를 지키옵소서. 일곱 번째, 스스로 먼저 일신 하시옵소서.

백성들은 붕어, 가재, 어패류에서 개, 돼지 취급을 받더니만 이제는 먼지가 되어서 까지 상소를 그칠 수 없다. 신하들의 상소와 간언을 경청하고 받은 왕은 성군이 되었으나 주위를 온통 간신들로만 채운 왕은 참극을 당하는 것은 역사적 팩트이다.

이 상소는 먼지 같은 백성이 급기야 머리 풀어 제 도끼위에 올려놓고 옷고름마저 풀어 헤쳐 가슴 터지게 부르짖는 외침이 아니고 그 무엇이더냐! 즐비한 대신들과 지존의 나라님 중에 뉘라서 이들보다 더 영명하고 더 절실할까나! 그 누구의 어떤 마음이 어두워지는 폭풍의 바다 위, 백척간두에 선 이 나라의 앞길을 비추이는 횃불이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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