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여행
느린 여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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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근/진주보건대학교
관광계열 교수
여행이란 평소 익숙한 환경을 떠나 다시 돌아올 목적으로 낯설음을 경험하기 위해 길 떠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낯설은 경험은 늘 반복되는 고단한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이제 여행은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과거 우리의 여행습관은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곳’을 이라는 기본 법칙에 충실했지만 최근에는 ‘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걸으면 볼 수 있다’는 올레길이 관심을 끌면서 전국에 수많은 ‘느린 여행’ 코스가 개발되어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느린 여행’시대의 도래를 예측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 자전거를 타고 두 차례 전국일주를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여행은 목적지를 정한 뒤 주로 기차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목적지에 도착, 예상되었던 것을 보고 오는 형태였다. 자전거여행을 생각한 것은 젊은 치기에서 나온 용기이기도 하지만 당시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했던 열망을 받쳐줄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자전거 한 대에도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세상이지만, 필자가 이용했던 자전거는 고물상에서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거저 얻다시피 한 것이었다. 친구에게 빌린 최소한의 야영 장비를 싣고 페달을 밟았을 땐, 홀로 멀고 낯선 길을 떠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또 다른 세상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 넘치는 마음이 충분히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가진 것 없어 선택했던 무전여행의 추억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그 자유로움의 매력을 잊지 못해 일본 자전거 여행을 두 차례 더 했다. 처음엔 후쿠오카-나가사키-구마모토-아소산-벳푸-시모노세키를 거쳐 다시 후쿠오카로 이어지는 코스를, 두 번째엔 나고야에서 오사카를 거쳐 히로시마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요즘은 일본이 아니라 자전거를 이용해 아예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많고, 도보를 이용한 세계일주의 여행기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당시는 해외여행이 지금만큼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더구나 자전거를 이용한 여행은 더더욱 그러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잘 가꾸어진 주요 관광지를 순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맨얼굴의 생활상에 대한 경험은 너무도 신선했다. ‘느린 여행’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은 이 세상이 감추어 둔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소중한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목마른 여행자에게 건네는 한 잔의 물과 정감 넘치는 인사말에 가슴에선 행복감이 피어나고 육체의 고단함조차 꿀맛 같은 단잠을 선물해 주었다. 낯선 여행자에게 따뜻한 밥상을 권했고, 폭우로 텐트를 칠 수 없을 때, 대가없이 기꺼이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은 배려하는 삶의 현장체험이었던 셈이다.
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비가 잠시 멈추어도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불쾌지수가 높다. 그럴수록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제 곧 휴가철이 다가온다. 유명한 관광지도 좋겠지만 몸과 정신이 자유로운 ‘느린 여행’의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느린 여행’은 기존의 여행방정식 틀과는 다른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일상을 벗어나 낯설음을 경험하다’는 여행의 기본 법칙에 따른다면 반드시 먼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가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먼 곳으로 떠나야만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평소에 이용하지 않았던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을 왕복하기, 자신의 체력을 고려해 가까운 곳으로의 도보여행, 낯선 동네 순례, 평소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한 뒷산 길 구석구석 다니기 등 모두가 ‘느린 여행’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시내버스를 타든 낯선 마을을 걷든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면 출퇴근길에서도 ‘낯설음’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로운 여행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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