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국보가 된 희랑대사 좌상
진주성-국보가 된 희랑대사 좌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25 14:3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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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국보가 된 희랑대사 좌상

가야산 해인사에 가면 희랑대(希朗臺)라는 이름의 암자가 있다. 자그마한 암자인 희랑대가 널리 알려진 것은 암자 이름과 같은 희랑대사 조각좌상 때문이다. 희랑대사의 희랑이라는 이름은 대사가 수도에 정진하던 해인사 암자 희랑대에서 따왔다. 해인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희랑대사의 조각좌상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번에 문화재청에 의해 국보로 지정되는 경사를 맞았다.

희랑대사 좌상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활약한 희랑대사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이다. 대사의 생몰년은 미상이지만 역사서 등을 볼 때 940년을 전후해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희랑대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왕건과 희랑대사의 인연은 ‘가야산 해인사 고적’ 등에 나오는데 해인사 인근에서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이던 왕건이 전세가 불리해지자 당시 해인사 주지인 희랑대사를 찾아가 스승으로 섬기겠다며 도움을 간청했다고 한다. 이를 수락한 대사가 승병을 보내 후백제군을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이를 계기로 왕건은 해인사 증축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 중요문서를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희랑대사 좌상은 높이 82.3㎝, 무릎너비 60.6㎝ 의 등신상이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는다. 희랑대사 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어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 좌상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乾漆)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다.

희랑대사 좌상의 또 다른 특징은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희랑대사에게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頂穴, 정수리에 난 구멍)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한다.

해인사에는 우리나라의 대포적인 국보인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이 있는데 이번에 희랑대사 좌상이 국보로 승격되면서 경사를 맞았다. 학승 시절 해인사에서 수학했던 노납에게는 이번 희망대사 좌상의 국보 승격이 매우 반갑고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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