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여고 3년생의 푸념
아침을 열며-여고 3년생의 푸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28 15: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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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여고 3년생의 푸념

“대학 졸업하고 난 다음에 내가 하고픈 학과를 선택해 다시 대학 들어갈 거야”내가 잘 아는 이의 식당에서 그 가게 주인의 딸과 동년배인 여고 3년생들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난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다. 아직 대학도 들어가지 않은 고3수험생들이 대학 졸업 후에 자기 하고픈 학과에 들어가겠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런데 내가 듣기에 더 당혹스러운 모습은 그 말에 모두 다 “나도”, “나도”하며 동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학생들의 어머니도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나름대로 자기들 학교에서 전교 최상위권에 들어간다는 우수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나 역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대단히 현실적이라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대단히 씁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의 교육열이 오늘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또 한편으로 우리의 교육과정에 낭비되는 점들은 없었느냐 하는 점이다. 전공 따로 인생 따로, 대학 전공과 인생진로가 전혀 걸맞지 않은 우리 교육풍토, 그렇지만 자녀들에 대한 막연한 교육열은 학원산업, 초·중·고·대학·대학원에 종사하는 교사 교수 행정직원, 정치적으로는 각종 교육위원, 시민위원, 교육감 등 정치적 관료들의 일자리와 밥벌이를 채워주는 부가 기능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어떻게 아직 대학에도 들어가지 않은 고3수험생이, 지금 막 자기 적성과 미래를 놓고 고민하여야 할 시기의 성적 상위권 여학생이, 그냥 선생님들이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교의 명예를 살릴 수 있는 대학, 어머니나 자신들의 외형적 품격(?)을 자랑할 수 있는 이름난 대학에 일단 들어가 한 층 기분 좋은 만족감을 누린 다음, 이후에 자기의 적성을 살려 자기가 하고 싶고 원하는 학과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또 이 말에 모두 동조하고 있으니, 이를 듣고 있는 필자는, 참으로 우리 사회가 넉넉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나는 교육이란 도덕적 인격도야와 수단적 실력향상으로 자신과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열어가는 의무와 필수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 존경스럽고 그리운 나머지 스승의 그림자 곁에도 감히 가기 두려웠고, 어쩌다 선생님께서 머리에 손이라도 얹어 쓰다듬고 칭찬이라도 하려고하시면 그 행복감이 왈칵 몰려와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 그 추억에 전율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감히 학교나 학생들 앞에 서기가 두려웠고 지금도 매우 신중해 한다.

그렇다. 그런데 이제는 교육은 하나의 서비스 상품이 되어 버렸다. 그냥 체험 놀이의 하나로 변해버렸다. 학교는 시스템이 만든 하나의 놀이터에 불과하고, 교과서와 교재는 놀이 방법을 알려주는 놀이 매뉴얼에 지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그저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점원이고, 교수는 그 물건을 만들어 공급할 줄 아는 생산-판매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학교라는 놀이터에서 자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했다 싶으면 그 부모들은 다짜고짜로 득달같이 달려와 교장 선생님을 윽박지르고 선생님을 다그친다. 교수들은 자기 전공이란 물건을 팔아먹기 위하여 학생들에게는 괴롭고 불필요한 과목임에도 필수이수학점에 넣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만에 하나 칭찬이라도 할 성 싶은 마음으로 학생들의 신체에 조금이라도 닿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성추행이란다. 이제 ‘교육(敎育)’이란 개념은 물 건너가고, 그래도 아직은 격조가 조금 스며있는 ‘놀이(遊戲)’로만 인식된다. 선생은 그 조력자에 불과하고, 학교는 놀이터의 기능밖에 더 큰 의미가 없다.

대학 역시 보다 큰 놀이터에 불과하니, ‘나 때는 말이야(latte is horse)’에 익숙한 필자와 같은 꼰대들이 가지고 있는 숭고한 이념으로서의 ‘대학관’으로써 이들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나 때는 우리 동네에서 한 명이 대학 갈까 말까 할 정도로 대학생이 귀하였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대학생들이다.

우리 민족의 교육열은 다른 민족들보다 더욱 극성스럽다는 것은 익히 들은 바다. 중앙아시아 동토(凍土)에서, 멕시코 농장에서, 브라질 사탕수수농장에서, 하와이 농장에서 먹을 것은 먹지 않고 굶더라도 아이들 교육은 시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그 결과 우리 민족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은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는 일화들이 많다. GNP 형편상 도저히 의무교육을 실시할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교육’을 실시한 대한민국, 그 결과 오늘나의 대한민국 위상을 정립하게 되었다는 평가도 많다.

어떻든, 어떤 형식이든, 어떤 과정이든 고3수험생들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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