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전 오늘도 정리 중이랍니다
아침을 열며-전 오늘도 정리 중이랍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08 15: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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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놀이문화연구가
채영숙/놀이문화연구가-전 오늘도 정리 중이랍니다

삶의 환경을 바꾸어 보려고 이사 온 지 벌써 4개월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난 정리 중이다. 계절이 바뀌었다. 여름에 이사를 왔는데 벌써 겨울옷을 찾고 있다. 옷을 정리하던 중 계절이 바뀌어 여름옷을 대신해 가을 옷과 겨울옷이 손이 쉽게 갈 수 있는 바깥 위치의 옷장으로 자리 이동을 해 본다.

방 한 쪽 벽을 따라 만들어 둔 책장에 애지중지 여기면서 모아두었던 책들도 이제 정리를 시작해 본다. 또다시 나를 돌아본다. 내 전공이 빠르게 변하는 IT 분야인지라 전공 수업을 위해 구입한 책들은 이미 쓸모가 없다. 새로운 버전의 소프트웨어가 나오면 구 버전의 도서는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하게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정리가 귀찮아 그냥 모셔두기만 한 것들이 너무 많다.

중고서점에서 재구매를 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기에 알아보니 출간년도와 출판 부수에 따라 최상수준의 책만 10%를 인정해 준단다. 내가 가진 500여권의 책들 중에서 겨우 20권 정도만 값을 쳐준단다. 그동안 이 많은 책들을 구입하느라 비용을 지불하고, 또 이사하느라 비용을 지불했는데 세상의 돈 가치로 인정해 주는 것은 겨우 20권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값을 매겨주지 않는 책들 중에서 깨끗한 책은 주변 지인들 혹은 사설 도서관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그래도 남는 나머지는 이제 무게를 달아서 값을 매겨주는 고물상으로 가져가야 하나 보다.

난 이 많은 책들을 왜 이렇게 보관하고 있었을까? 책 욕심이 부른 결과이다. 찬찬히 둘러보니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은 몇 권 없다. 남편이 귀중히 여기는 책들. 저자의 친필 사인이 있는 책, 친구에게 혹은 가족에게 선물 받은 책, 나의 석사 학위 논문과 박사 학위 논문, 구입이 불가능한 귀한 책들부터 다시 책장에 차곡차곡 자리를 다시 잡아준다.

시간 여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다른 시각이 생겨 좋다.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생각조차 내려놓고 멍하니 시간 보내기가 내 적성에 딱 맞다.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이니 다시 뭔가를 해 보라는 지인들의 걱정 섞인 충고들도 이해는 하지만, 그냥 쉬려고 일을 그만 두었으니 한 동안은 해 보지 않은 다른 흥미꺼리들을 찾아보려 한다.

이젠 노안이 와서 책읽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이 내 생애 가장 젊은 시간이지 않은가. 아마 다시 수개월,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몇 푼의 돈과 바꾸는 일은 조금 미루어 두어야겠다. 지금까지 미루어 두었던 나만의 삶의 기록을 더 늦기 전에 정리 작업을 해 두어야겠다. 고물상으로 가져가기를 미루고 야심차게 난 또다시 결심을 해 본다. 한 번씩 읽은 책들도 있고, 필요한 부분만 읽은 책들도 있으니, 이왕 갖다버릴 것 버리기 전에 다시 차근차근 책 속에 내용을 정리해 보려 한다. 삶의 나침표가 되어준 책들이지 않은가.

이대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TV와만 친구를 하고 있으면 몸을 망가뜨리는 것 같아 새로운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달성해 보려 한다. 그 중 하나가 100대 명산 오르기와 멋진 걷기 길들을 걸어보려 한다. 그 시작으로 억새가 멋졌던 근교 산에 가보니, 산은 초록의 색에서 다양한 색채로 모습을 바뀌었다. 도서 정리 작업은 조금씩만 하고, 땀 흘리는 바깥나들이부터 하면서 몸속에 자리 잡은 지방과 염증들도 정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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